여행을 다니다가 문득 호텔 안에서 온전히 푹 쉬고 싶을 때, 큰맘 먹고 예약하는 곳이 바로 특급 호텔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 푹신한 침대에 눕는 순간,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압도적인 아늑함이 밀려옵니다. "짐만 대충 풀고 얼른 나가야지" 했던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지독한 귀찮음이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하죠. 결국 호텔 방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쉬다 보면, 체크아웃할 때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추가로 지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누운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단순한 게으름 때문에 충동적으로 지갑을 연 걸까요? 사실 우리가 객실 문을 닫고 들어선 그 순간부터, 투숙객의 귀차니즘을 극대화하여 소비를 유도하는..
화려한 조명 아래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요리들, 매장 가득 퍼지는 맛있는 냄새, 그리고 텅 빈 접시를 든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뷔페의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과연 오늘 얼마나 많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설렘에 빠지게 됩니다. "하루 종일 굶었으니 오늘은 무조건 비싼 고기와 회로 본전을 뽑겠다!"라며 이미 먹을 음식들을 머릿속으로 설계를 하곤 입장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항상 내가 예상했던 식사량보다 언제나 미달된 채 배가 불러 만족스럽지 못하는 상태로 나오게 됩니다. 두 접시쯤 비우고 나면 벌써 배가 턱끝까지 차오르고, 결국 후식 코너로 발길을 돌리며 아쉬움을 삼키게 되죠. 사실 우리가 접시에 음식을 담고, 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디저트로 식사를 마무리하는 모든 과정은 ..
혹시 여러분은 집 근처 창고형 할인마트에 자주 방문하시나요? "필요한 것만 몇 개 후딱 사 오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가, 매장을 한 바퀴 돌고 계산대에 서서 카트에 가득 쌓인 물건과 수십만 원이 찍힌 영수증을 보고 당황했던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분명 알뜰하게 장을 보러 간 것이었는데, 왜 창고형 마트에만 다녀오면 늘 예상보다 훨씬 큰 지출을 하게 되는 걸까요? 단순히 우리의 소비 욕심 때문일까요? 아니면 마트가 파놓은 거대한 심리적 시나리오 때문일까요? 착시를 부르는 공간의 비밀 창고형 마트의 거대한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 세계와 잠시 완벽하게 단절됩니다. 카지노나 대형 쇼핑몰이 그렇듯, 이곳 역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창문..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잠깐 남는 시간에 가볍게 시작했던 무료 모바일 게임. 처음엔 그저 "심심한데 지루한 시간이나 때워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손가락이 결제 버튼 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강한 유혹에 빠졌던 경험,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보셨던 분들이라면 분명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분명 내 의지로 즐겁자고 시작한 게임인데, 이상하게 특정 구간만 지나면 답답해지고, 하루라도 접속을 안 하면 무언가를 크게 손해 보는 듯한 조바심이 밀려오곤 합니다. 과연 이것은 내 의지력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거대한 심리적 장치가 작동하고 있는 걸까요? 지갑이 열리는 첫 순간 , 초보자 한정 패키지 TV나 유튜브, SNS를 보다 보면 "올해 최고의 대작 출시!..
출출한 야식이 어김없이 생각나는 늦은 밤이나, 주말에 손 하나 꼼짝하기 싫고 밥 차려 먹기 귀찮을 때 무심코 배달 어플을 켰던 경험, 아마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특히 요즘에는 1인 가구를 위한 알찬 메뉴 구성도 많아지고 할인 쿠폰도 자주 풀리다 보니, 저 역시 예전보다 배달 어플을 찾는 빈도수가 훨씬 많아진 것 같은데요. 먹을 때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터치 몇 번에 가볍게 결제를 마치곤 합니다. 돈을 썼다는 실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이죠. 하지만 음식을 다 먹고 배가 빵빵하게 불러오면, 식탁 위에 널브러진 포장 용기를 보며 "아, 오늘 밤도 또 야식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구나" 하는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자괴감이 밀려오곤 합니다. 그런데 너무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배달..
주말이나 휴일에 큰맘 먹고 복합 쇼핑몰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평소 옷 욕심이 크게 없는 편이라 옷 한 번 사러 가는 게 연례행사 같은 일인데, 기왕 간 김에 계절별로 입을 옷을 한꺼번에 여러 벌 무더기로 골라 잡곤 하는데요. 양손 가득 옷을 안고 좁은 피팅룸 안으로 들어가서 커튼을 치고 바지를 갈아입은 뒤 거울 앞에 서는 순간, 유독 그날따라 거울 속 내 모습이 사뭇 달라 보였던 적이 많습니다. 다리도 유독 길어 보이고 얼굴도 작아 보이는 모습에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들게 되는데요. 그렇게 신나서 카드를 시원하게 긁고 집에 돌아옵니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새 옷을 꺼내 입고 집 화장실 거울 앞에 서는 순간, 어제와는 전혀 다른 지극히 정직하고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고 큰 배신감에 휩싸이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