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의 나이에 칙칙한 차고에서 창업해 불과 20살에 자산 1억 달러를 거머쥔 소년. 숫자만 보면 자본주의가 낳은 기적 같은 신화의 주인공인데, 충격적이게도 그 회사 매출의 무려 90%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사업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희대의 사기 기업은 미국 나스닥시장에 버젓이 상장되어 시가총액 3억 달러(한화 약 4,000억 원)를 찍으며 월가를 비웃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 금융계를 발칵 뒤흔들었던 배리 민코우와 'ZZZZ BEST' 사건은 개인이 저지른 미국 역사상 가장 기괴하고 거대한 투자 사기극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년 사기꾼이 던진 덫은 우리가 투자를 할 때 화려한 '스토리'와 언론의 '스타 만들기'에 얼마나 눈이 멀기 쉬운지 뼈저리게 증명해 줍니다.

나스닥에 상장된 폰지 사기 기업
일반적으로 사기꾼들은 정보가 부족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주로 노린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ZZZZ BEST 사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 덫에 걸려 전 재산을 탕진한 수많은 월가의 엘리트 투자자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1982년, 고작 16세였던 소년 배리 민코우는 캘리포니아의 허름한 두 칸짜리 차고에서 'ZZZZ BEST'라는 카펫 청소 회사를 창업합니다. 자본금은 할머니에게 빌린 700달러가 전부인 새 발의 피 수준이었죠. 하지만 불과 4년 뒤, 이 회사는 나스닥 시장에 당당히 상장되어 시가총액 2억 달러를 가볍게 돌파했고, 20살의 민코우는 미국 전역이 찬양하는 1억 달러짜리 청년 자산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활용한 필살 무기는 실제 수익 창출 없이 새로운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하며 덩치를 키우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였습니다. 현금 유입이 단 1초만 끊겨도 폭발하는 시한폭탄이었죠.
민코우가 꾸며낸 가짜 유령 사업의 핵심은 대형 건물들의 '보험 복원 사업'이었습니다. 홍수나 화재로 손상된 건물의 카펫을 대형 보험사의 의뢰를 받아 복원해 준다는 개념인데, 계약 한 건당 수십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에 달하는 알짜배기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실제로는 단 한 건의 계약도 수주하지 못했지만, 그는 가짜 작업 지시서, 위조 송장, 심지어 유령 감사 회사까지 가짜로 만들어 월가를 속였습니다. 의심 많은 투자자들이 진짜 현장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면, 실제 다른 회사의 대형 공사 현장을 며칠 동안 거액에 임대해 ZZZZ BEST의 간판을 걸고 연출하는 대담함을 보였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애국심을 마케팅하고 포브스가 칭송하는 "차세대 스티브 잡스"라는 화려한 스토리 서사가 만들어지자, 나만 이 황금 열차를 놓칠지 모른다는 대중들의 소외공포가 폭발했습니다. 입소문이 새로운 눈먼 자본을 끌어오고, 그 돈으로 다시 가짜 수익을 배당하는 추악한 악순환이 완성된 것입니다.
저는 이 10대 소년이 만든 화려한 서사에 월가가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자취방에서 스마트폰으로 핀테크 스타트업이나 유행하는 테마주, 혹은 실체 없는 알트코인 백서를 읽으며 가슴 설레어했던 제 철없던 투자 잔혹사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이 청년 CEO는 카이스트 출신의 천재다", "이 코인은 전 세계 결제 시스템을 바꿀 혁신이다"라는 언론의 찬사와 자극적인 서사만 믿고, 기업의 실질적인 재무 데이터나 진짜 매출이 발생하는지 여부는 전혀 확인하지 않은 채 포모에 휩쓸려 제 피 같은 월급을 밀어 넣었었죠. 그 서사의 결말은 언제나 소리 소문 없는 상장폐지와 계좌의 반토막이었습니다. 수백만 달러를 굴리는 월가의 거물들조차 10대 소년이 연출한 가짜 공사 현장과 그럴듯한 브랜딩 스토리에 속아 넘어갔는데, 하물며 방구석 개미인 제가 그 정교한 서사의 덫을 무슨 수로 피할 수 있었겠습니까. 투자의 본질은 화려한 스토리가 아니라 차가운 실체라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했습니다.
감시망의 구멍, 회계 부정이 가능했던 이유
ZZZZ BEST라는 유령 회사의 사기극이 이토록 거대하게 몸집을 불릴 수 있었던 치명적인 이유는, 시장의 최후의 보루여야 할 외부 감사 시스템의 구멍 때문이었습니다. 이 회사의 공식 재무 감사를 맡은 곳은 놀랍게도 당시 세계 최대 회계법인 중 하나였던 초엘리트 그룹 '어니스트 앤드 위니'였습니다. 대중과 투자자들은 그 거대한 이름값의 신뢰 시스템만 믿고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독립된 제3자의 시선으로 기업의 재무제표가 실제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지 엄격하게 검증해야 할 회계 감사 절차는 완벽하게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막대한 감사 수수료를 챙겨주는 대고객 민코우의 비위를 맞추느라 원본 계약서 조사는커녕, 그가 정교하게 연출한 가짜 공사 현장에 속아 매출의 90%가 허구인 쓰레기 장부에 '적정 의견'의 도장을 꾹 찍어주었습니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거대 감사 기구와 나스닥의 IPO(기업공개) 상장 심사 시스템이 통째로 바보가 되어 가던 와중에, 이 3,000억 원짜리 사기 제국의 목줄을 끊어버린 것은 허탈하게도 금융 당국이 아닌 평범한 한 명의 일반 시민이었습니다. 동네 작은 꽃집에서 고작 601달러를 부당 청구받은 소비자 '로빈 스완슨'이 에쿼티 펀딩의 카드 복제 청구 사기에 분노해 직접 피해 사례를 발로 뛰며 모아 LA 타임스 기자에게 제보한 것이 파멸의 시작이었습니다. 월가의 천재 펀드 매니저들과 세계 최고의 회계법인이 수년 동안 돋보기를 들고도 찾아내지 못한 단서들을, 고작 23.95달러짜리 꽃 배달 사기에 화가 난 서민의 집념이 단 한순간에 폭파해 버린 것입니다. 언론 보도가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FBI가 수사에 착수했을 정도로 규제 당국의 사후적 감독 체계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세계적인 회계법인의 무능과 타락 대목을 읽으면서, 대한민국 코스닥 시장에서 잡주를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흘려야 했던 제 서글픈 개미투자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국내 상장사들도 잊을 만하면 수천억 원대 횡령·배임 사태가 터지고 하루아침에 상장폐지 절차를 밟으며 개미들의 영혼을 파괴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대형 회계법인들이 내놓은 감사 보고서는 언제나 '문제없음'이었습니다. 기업이 주는 두둑한 수수료에 눈이 멀어 장부 속 가짜 종이 서류만 대충 훑어보고 눈을 감아주는 감시자들의 직무유기는 80년 전 미국이나 지금의 대한민국이나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습니다. 기관의 이름값이라는 견고해 보이는 시스템을 맹목적으로 믿었던 대가는 언제나 우리 같은 약자들의 잔인한 손실뿐이라는 서글픈 진실을 다시 한번 온몸으로 체감했습니다.
반전 서사, 대중을 다시 한번 속인 회개의 연극
연방 교도소에 수감된 배리 민코우는 그 안에서 종교적으로 독실하게 거듭났다며 눈물 어린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사법 당국은 그의 감동적인 반전 서사에 속아 2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은 그를 고작 7년 만에 모범수로 조기 석방해 주는 치명적인 오판을 내렸습니다. 출소 후 목사가 된 그는 "과거의 죄를 씻겠다"며 사기 발견 연구소를 설립해 기업들의 회계 부정을 적발하는 영웅으로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그를 유죄 판결했던 판사조차 보호 관찰을 면제해 주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하지만 대중이 "사기꾼이 회개하여 우리를 지키고있다"며 칭송하던 그 반전 서사마저도, 훗날 더 거대한 사기를 치기 위해 민코우가 완벽하게 대본을 짜고 연출한 정교한 연극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사기 발견 연구소의 이름으로 특정 기업의 허위 사기 의혹 보고서를 발표하기 직전, 해당 주식을 미리 대규모로 공매도 해 두는 영악한 수법을 썼습니다. 악의적인 폭로 리포트로 주가를 반토막 낸 뒤 뒤에서 엄청난 시세 차익을 챙기는 구조였습니다. 허벌라이프나 레나 코퍼레이션 같은 대기업들을 상대로 허위 고발을 난사한 뒤 뒤로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 챙기거나, 주가를 폭락시켜 놓고 정작 본인은 바닥에서 주식을 매집하는 악질적인 시세조종을 일삼았습니다. FBI 금융 범죄 보고서 데이터가 증명하듯, 화이트칼라 반복 범죄자들의 재범률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으며 사회적 신뢰를 무기로 삼아 더 잔인한 수법으로 진화합니다. 사법부와 대중의 온정주의적 신뢰를 방패 삼아 새로운 무고한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짜내던 이 연쇄 사기꾼은 결국 2010년대가 되어서야 다시 덜미가 잡혀 감옥으로 처박혔습니다.
저는 이 목사 가면을 쓴 사기꾼의 부활 서사를 보면서, 주식판과 코인판에서 한 번 크게 해 먹고 상장폐지를 시킨 작전 세력들이나 대주주들이 이름만 싹 바꾸어 새로운 유망 벤처기업의 회장님으로 화려하게 재등장하는 비열한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주식 시장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 지독하리만큼 건망증이 심합니다. 한 번 개미들의 피눈물을 짜낸 악질적인 인물들이 세련된 신기술과 재활의 스토리를 들고 나오면, 대중들은 또다시 "이번엔 진짜 대박이다"라며 불나방처럼 제 발로 돈을 싸 들고 찾아갑니다. 사법 시스템의 유약한 처벌과 대중들의 안일한 온정주의가 살아있는 한, 사기꾼들의 무대는 더 자극적이고 감동적인 서사로 옷을 갈아입으며 우리의 지갑을 계속해서 노릴 것입니다.
배리 민코우와 ZZZZ BEST의 잔혹한 연쇄 사기극은 아무리 화려한 기술적 포장과 감동적인 창업 서사로 대중의 눈을 가려도, 실체 없는 자산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시스템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는 금융 정글의 생리를 그대로 보여준 명백한 사례입니다. 투자 사기는 무지한 자가 아니라,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감시 시스템과 외부의 이름값을 맹목적으로 믿는 순진한 사람들의 신뢰를 가장 강력한 사냥 무기로 삼습니다. 이제 우리는 투자 판단을 내릴 때 언론의 주목도나 감동적인 스토리에 혹하는 것을 완전히 끝내고, 기업의 진짜 잉여현금흐름과 실질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제대로 뜯어보는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