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일본은 직접 체감하지 못한 화려한 세상이었습니다. 그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닌텐도 게임기나 소니 워크맨으로 그 시절의 풍요로움을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도쿄 땅을 다 팔면 미국 전체를 산다"던 일본의 신화는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대중의 눈먼 탐욕이 합작한 결과였습니다. 결국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긴 불황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 파티의 빚은, 버블을 누리지도 못한 청년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습니다.

플라자 합의에서 시작된 거품
1980년대 초중반, 일본은 전 세계 제조업을 그야말로 집어삼키던 무결점의 수출 제국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시장에서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은 단순한 원산지 표시가 아니라 압도적인 품질과 혁신의 보증수표였습니다. 도요타의 자동차와 소니의 워크맨, 그리고 글로벌 시장의 80%를 장악했던 일본산 반도체는 미국 경제의 자존심이었던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과 실리콘밸리를 처참하게 무너뜨렸습니다.
일본이 이토록 독보적인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정교한 기술력과 더불어 '엔저(엔화 가치 약세)'라는 강력한 날개를 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버드대 에즈라 보겔 교수가 쓴 저서의 제목처럼 '재팬 이즈 넘버원(Japan as Number One)'은 예언이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경제의 위상은 세계 최강대국이라 자부하던 미국마저 거대한 실존적 공포를 느끼게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은 곧 잔혹한 착각으로 드러났습니다
일본 버블 경제의 출발점은 1985년 플라자 합의입니다. 플라자 합의란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의 G5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여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기로 합의한 국제 협약입니다. 쉽게 말해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일본 엔화 가치를 강제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엔화 가치는 협약 직후 단기간에 50% 가까이 급등했고, 수출로 먹고살던 일본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일본 중앙은행은 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1986년 5%에서 2.5%까지 단계적으로 낮췄습니다. 시중에 돈이 풀리면 기업이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기대와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풀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생산적인 곳보다 당장 오르는 곳에 먼저 눈을 돌립니다. 실제로 당시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는 자이테크가 유행했습니다. 자이테크란 제조나 서비스 같은 본업보다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재테크 방식을 가리킵니다. 기업이 공장을 짓는 대신 땅을 사고, 주식을 굴리는 데 혈안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은행들은 폭등한 담보 가치를 믿고 부실 대출을 남발했습니다. 부실 대출이란 채무자의 상환 능력보다 담보 자산의 시세만 보고 무분별하게 실행한 대출을 말합니다. 대출 심사가 사실상 형식에 불과했던 셈입니다.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지만 이미 뒤늦은 선택
닛케이 평균 주가(Nikkei 225)는 1985년 12,000엔대에서 1989년 말 38,915엔까지 치솟았습니다. 닛케이 225는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대표 기업 225개의 주가를 지수화한 것으로, 일본 경제의 체온계 역할을 하는 지표입니다. 이 지수가 4년 만에 세 배 이상 오른 셈인데, 당시 일본 전체에 '땅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토지 불패 신화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거품을 잡기 위해 일본은행은 1989년 5월부터 1990년 8월까지 기준금리를 2.5%에서 6%로 다섯 차례 급격히 인상했습니다. 동시에 일본의 정부부처였던 대장성은 금융기관의 부동산 관련 대출 총액을 직접 제한하는 총량 규제를 1990년 3월 시행했습니다. 총량 규제란 은행이 부동산 관련 신규 대출을 늘리지 못하도록 정부가 한도를 정해 강제하는 조치로, 시장으로 향하는 자금줄을 직접 차단하는 방식입니다. 이 두 개의 강력한 정책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얼어붙었습니다.
주가는 1990년 말부터 40% 이상 폭락했고, 도쿄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최고점 대비 80% 이상 하락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자산 가격이 반토막 났는데도 빚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부실채권(Non-Performing Loan)이 일본 금융 시스템 전체를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실채권이란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이 원금이나 이자를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불량 대출 자산을 뜻합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가장 씁쓸했던 건 세대 간 불균형이었습니다. 파티를 즐긴 건 버블 세대였지만, 저금리 저성장 속에서 저임금과 비정규직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떠안은 건 그 이후 세대였습니다. 잃어버린 30년이란 결국 한 세대의 탐욕이 다음 세대에 전가된 청구서였던 셈입니다. 일본의 25~34세 청년층 비정규직 비율은 버블 붕괴 이후 급격히 상승했으며, 이는 일본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출처: 일본 총무성 통계국).
일본 버블 붕괴로 이어진 핵심 연쇄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초저금리로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집중
- 자산 가격 버블이 극도로 팽창하는 동안 금리 인상을 지연
- 뒤늦은 급격한 금리 인상과 총량 규제로 시장 급랭
- 담보 가치 폭락으로 은행권 부실채권 급증
- 기업 연쇄 도산과 소비 위축으로 디플레이션 장기화
서울 집값과 잃어버린 세대,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저는 어릴 때라 일본 버블 전성기를 직접 체감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니, 닌텐도, 세가 같은 일본 전자기기와 문화가 한국 사회를 가득 채우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기억과 지금 일본 기업들의 위상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한때 세계 시장을 휩쓸던 기업들이 어느 순간부터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국 대중문화가 오히려 일본을 앞서는 모습을 보면 버블 붕괴의 여파가 단순히 경제 수치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걸 실감합니다.
지금 서울 부동산 시장을 보면 불안한 데자뷔가 있습니다. 직장인이 월급만으로 서울 아파트를 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 됐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못 산다'는 심리 때문에 대출을 최대한 끌어다 매수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심리가 바로 일본 버블 시대의 '토지 불패 신화'와 구조적으로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가계부채비율(DTI)이라는 지표가 있습니다. DTI란 연간 소득 대비 부채 원리금 상환액의 비율로, 개인이나 가계의 실질적인 부채 부담 수준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GDP 대비 100%를 넘어 주요국 가운데 손에 꼽히는 수준입니다(출처: 한국은행). 이 숫자가 단순한 통계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제 주변에서 이미 그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실제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서늘한 건 인구 구조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기준 0.72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출처: 통계청). 인구가 줄면 주택 수요 자체가 감소합니다. 일본도 버블 붕괴 이후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맞물리며 부동산 가격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구절벽에 다가가고 있다는 점은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가장 무서운 건 자산 가격 폭락 그 자체가 아닙니다. 자산은 반토막이 나도 빚은 그대로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일본 버블 붕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폭락한 부동산을 끌어안은 채 소득이 생기는 족족 대출 원리금을 갚는 데 써야 했습니다. 지갑이 닫히고 소비가 줄면서 디플레이션이 심화됐습니다. 디플레이션이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으로, 기업 수익이 줄고 고용이 감소하는 악순환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부채의 무게는 버블 시대의 파티를 즐기지도 못한 다음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습니다. 저임금, 비정규직 양산으로 이어진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는 그 결과물입니다.
물론 현재 한국 상황이 1980년대 말 일본 버블과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일본처럼 전국적이고 극단적인 수준의 자산 거품이 끼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더라도 비슷한 패턴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불편한 유사성을 직시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라고 봅니다.
관료들의 책임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플라자 합의 이후 버블 신호가 뚜렷했음에도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금리 인상을 미루다가 뒤늦게 급브레이크를 밟은 일본 정책 당국의 판단 착오는 분명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좋을 때 미리 조이지 못하고, 나빠질 때 한꺼번에 조이는 방식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가장 나쁜 정책 타이밍입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집값은 절대 안 떨어진다는 믿음, 대출을 최대한 당겨 지금 당장 사야 한다는 조급함, 그리고 버블이 커지는 동안 눈치만 보던 정책 당국. 이 세 가지가 맞물릴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일본이 이미 보여줬습니다. 투자 결정을 내리기 전에 지금 내가 자산의 실질 가치를 보고 있는지, 아니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만 보고 있는지 한 번쯤 냉정하게 따져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