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73년 오일쇼크를 그저 역사책 속 옛날이야기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해서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서 주유소 기름값이 눈에 띄게 오르는 걸 직접 체감하고 나서야 50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제1차 오일쇼크가 낯선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일상과 직결된 문제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몸으로 느꼈습니다.

역사적 배경 - 50년 전 세계를 멈춘 그날의 기록
1973년 이전까지 석유는 배럴당 2~3달러에 거래되는, 말 그대로 물처럼 흔하고 싼 자원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선진국들은 이 값싼 에너지를 등에 업고 30년 가까이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이어왔습니다. 문제는 공급 구조에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 원유 시장은 엑슨, 셸, BP 등 이른바 '세븐 시스터즈'라 불리는 7개 서방 석유 메이저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세븐 시스터즈란 20세기 중반 중동과 남미 유전의 채굴권을 독점하며 가격 결정권까지 쥐고 있던 거대 민간 석유기업 카르텔을 뜻합니다.
이에 반발한 산유국들이 1960년 결성한 것이 OPEC, 즉 석유수출국기구입니다. OPEC은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생산량과 가격을 조율해 시장 지배력을 되찾으려는 국제 협의체입니다. 초창기에는 영향력이 미미했지만, 1970년 미국 국내 석유 생산량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면서 판세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서방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산유국들의 협상력도 함께 올라갔습니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제4차 중동 전쟁이 터졌고,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규모 무기를 지원하자 아랍 산유국들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같은 달 16일, OPEC은 원유 가격을 배럴당 3달러에서 5.12달러로 70% 일방 인상했고, 이튿날에는 미국·네덜란드 등 이스라엘 우호국들에 대해 석유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엠바고(embargo)를 선언했습니다. 엠바고란 특정 국가에 대한 무역 거래를 강제로 차단하는 경제적 봉쇄 조치를 말합니다.
무기가 된 석유
그 여파는 즉각적이었습니다. 유가는 12월에 배럴당 10달러를 돌파하더니, 1974년 1월에는 11.65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불과 3개월 만에 가격이 네 배 가까이 뛴 것입니다. 미국 주유소에는 'No Gas' 팻말이 나붙었고, 수백 대의 차량이 줄을 섰지만 기름을 넣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습니다. 네덜란드는 일요일마다 자동차 운행을 전면 금지했고, 영국은 주 3일 근무제를 도입했습니다. 일본에서는 화장지 사재기 소동이 벌어질 정도로 사회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석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던 일본은 전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현대 문명이 얼마나 석유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세계 전체가 한꺼번에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경제 현상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입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 침체(stagnation)와 물가 상승(inflation)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전통적인 경제 정책으로는 처방이 불가능한 최악의 조합입니다. 경기를 살리려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더 오르고,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더 꺼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미국·유럽·일본의 주가는 30% 이상 폭락했고, 전후 30년간 이어졌던 자본주의 황금기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석유 금수 조치는 1974년 3월에 해제되었지만, 유가는 배럴당 12달러 수준을 유지하며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에너지 패권이 서방 석유 메이저에서 OPEC 산유국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세계는 처음으로 에너지 안보(energy security)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에너지 안보란 국가가 경제 활동과 국민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오일쇼크가 남긴 구체적인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에너지 절약이 국가 정책의 핵심 과제로 격상되어 에너지 효율 기술 개발이 본격화됨
- 원자력·태양광·풍력 등 대체 에너지 투자가 급증하며 석유 의존도 감축 노력 시작
- 북해 유전·알래스카 유전 등 비중동 석유 공급원 개발이 가속화됨
- 연비 효율을 우선하는 소비자 인식 변화로 일본 소형차가 미국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에너지안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
저도 뉴스에서 호르무즈해협 봉쇄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금방 봉쇄는 풀리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그 좁은 해협의 봉쇄가 풀리지 않자, 제가 그동안 얼마나 안이하게 생각해왔는지 깨달았습니다.
호르무즈해협(Strait of Hormuz)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폭 약 33~90km의 좁은 수로입니다. 여기서 호르무즈해협이 중요한 이유는,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가 이 한 곳을 통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유 수입의 약 70%가 이 해협을 통해 들어온다고 알려져 있으며, 천연가스(LNG) 역시 상당 부분이 같은 경로로 수입됩니다. 이 수치를 보면서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한 구조 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실제로 해협 봉쇄 위기가 고조되자 당장 주유소 기름값이 눈에 띄게 올랐고, 봉쇄 시간이 길어지면서 원자재 가격 연쇄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 전반에 압박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1차 오일쇼크 때와 메커니즘이 판박이처럼 닮아 있습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산유국이 다양해졌고 전략비축유(SPR) 제도가 생겼다는 것인데, SPR이란 석유 공급 차질에 대비해 국가가 미리 비축해두는 원유 재고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 소비국들이 수개월치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단기 완충 수단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니다. 1차 오일쇼크 이후 재생에너지 개발에 본격적으로 투자했던 국가들도 결국 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같은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 저는 지정학적 리스크(geopolitical risk)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에너지 구조를 아무리 바꿔도 완전한 안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정학적 리스크란 특정 지역의 정치적 갈등·분쟁이 경제와 공급망에 미치는 위험을 뜻합니다.
이번 사태에서 더 씁쓸한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이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한국, 일본, 유럽의 평범한 시민들이 매일 주유소에서, 마트 영수증에서 그 댓가를 치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1973년에도 지금도, 가장 먼저 고통받는 건 서민들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에너지 가격 충격은 저소득층 가계 지출에 상대적으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분석됩니다(출처: 국제에너지기구). 이 구조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도 중동 의존도 완화를 위한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재생에너지 자립 역량 강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지만(출처: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 구조를 바꾸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는 반면 위기는 하루아침에 찾아옵니다. 제가 경험한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간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기술도 놀랍도록 발전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좁은 해협 하나에 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 위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제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시대가 오니 석유 의존도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시는데, 저는 그 전환이 완성되기 전까지 이런 위기가 또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상황이 하루빨리 외교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이 에너지 의존 구조를 다시 한번 점검할 때라고 봅니다. 이번 전쟁을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와 재생 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지 않으면 같은 공포는 또 찾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