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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영국 베어링 위기 (아르헨티나, 대마불사, 그리스)

by 재미있는경제사 2026. 5. 15.

혹시 1890년에 영국에서 일어난 베어링 위기에 대해 아십니까? 저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건이지만 이 사건과 매우 비슷한 사례가 불과 16년 전에 그리스에서 발생했었습니다. 대학생시절, 저는 2010년대 그리스 경제 위기를 보면서 왜 갑자기 국가 부도 상태에 직면했는지 초자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구조의 원형이 무려 130년 전 런던에서 이미 만들어졌었습니다. 1890년 베어링 위기는 현대 금융 위기관리의 모든 공식이 처음 가동된 사건이고, 그 공식은 지금도 놀라울 만큼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거품과 베어링스의 몰락

베어링 브라더스는 1762년에 설립된 은행으로, 나폴레옹 전쟁 자금 조달과 미국의 루이지애나 매입을 중개할 정도로 압도적인 신뢰를 가진 기관이었습니다. 유럽 어느 왕실도 이 은행의 이름 하나만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1880년대 후반, 베어링스는 아르헨티나에 올인에 가까운 투자를 감행합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철도, 항구, 곡물 수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고, 베어링스는 1885년부터 1890년 사이에 막대한 규모의 아르헨티나 국채를 인수했습니다. 여기서 채권 인수(underwriting)란, 발행 기관을 대신해 채권을 사들이고 이를 시장에 파는 것을 보장하는 역할입니다. 문제는 아르헨티나 페소가 폭락하고 정치 불안이 커지면서 그 채권을 아무도 사려 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는 겁니다.

베어링스가 떠안은 부채는 약 2,100만 파운드였고, 자산 대부분은 비유동성 증권이었습니다. 비유동성(illiquidity)이란 팔고 싶어도 당장 현금화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 상태에서는 회사가 장부상 흑자여도 당장 지급 불능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결국 1890년 11월, 베어링스는 잉글랜드 은행에 사실상 백기를 들었습니다.

거품이 꺼지는 데는 불과 몇 년밖에 안 걸렸고,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가 단 몇 주 만에 무너졌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베어링스가 이렇게 급속히 무너진 구조적 원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채권 인수 과잉: 시장 수요를 훨씬 초과하는 물량을 떠안음
  • 자산 쏠림: 포트폴리오가 아르헨티나 단일 국가에 집중
  • 통화 리스크 무시: 페소화 약세와 외화 부채 상환 능력을 과소평가
  • 정치 리스크 간과: 아르헨티나 내 정치적 불안정을 단순 변수로만 취급

대마불사, 130년 전에 이미 작동했다

대마불사라는 표현에 대해서 혹시 알고 계십니까? 원래는 바둑 용어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경제와 금융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의미로는 특정 기업이나 은행이 너무 커서, 그 기업이 망했을 때 국가 경제 전체가 마비될 정도가 되면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들여서라도 살려낼 수 밖에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잉글랜드 은행 총재 윌리엄 리더데일에게 주어진 시간은 48시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예금보험제도(deposit insurance)가 없었습니다. 예금보험제도란 금융기관이 파산해도 예금자의 돈을 국가가 일정 한도까지 보호해주는 장치인데, 그런 안전망이 전혀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베어링스 하나가 쓰러지면 연쇄 지급 불능 사태, 즉 시스템 리스크(systemic risk)가 런던 전체를 집어삼킬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리더데일은 정부 예산을 쓰는 대신 런던의 주요 민간 금융기관들을 소집했습니다. 메시지는 단순했습니다. 보증 기금에 참여하든가, 아니면 모두가 함께 망하든가. 심지어 베어링스의 직접적인 경쟁자들도 돈을 냈습니다. 며칠 만에 1,700만 파운드의 보증 기금이 조성됐고,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빌려온 450만 파운드의 금이 유동성을 뒷받침했습니다. 베어링스는 파산하지 않고 재편됐으며, 채권자들은 보호받았습니다.

이게 바로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개념이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 가동된 순간입니다. 어떤 기관이 너무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으면, 그 기관의 실패 비용이 구제 비용보다 훨씬 커진다는 논리입니다. 이 원칙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리먼 브라더스를 제외한 대형 금융기관들에 수천억 달러를 투입한 근거와 정확히 같습니다(출처: 미국 연방준비제도).

제가 1890년대를 살진 않았지만, 2010년대 그리스 구제금융 뉴스를 보면서 비슷한 구조를 느꼈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IMF가 투입한 구제금융 자금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독일과 프랑스의 대형 은행들이 그리스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는 데 쓰였다는 분석이 당시 여러 매체에서 나왔습니다. 기관을 살린다는 명분 아래 돈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1890년이나 2010년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에서 다시 본 공식, 역사는 왜 반복되는가

그리스 사태는 제게 베어링 위기의 현대판 확장판처럼 보였습니다. 그리스는 유로존 가입을 위해 국가 재정 적자 규모를 축소 신고했고, 유로화를 채택하면서 신용등급이 사실상 독일 수준으로 대우받아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쏟아진 저금리 자금으로 복지를 확대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치렀습니다. 국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동안 시장은 그걸 외면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새로 들어선 그리스 정부가 그동안 숨겨왔던 재정 적자의 실상을 공개하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그리스 국채 스프레드(spread)가 폭등했는데, 국채 스프레드란 독일 국채와 같은 기준 금리 대비 얼마나 더 높은 이자를 줘야 돈을 빌릴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이 수치가 치솟는다는 건 시장이 그 나라의 채무 불이행(default) 가능성을 심각하게 본다는 신호입니다. 그리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한때 30%를 넘겼습니다.

구제금융은 결국 투입됐지만, 조건은 가혹했습니다. 긴축재정(austerity)이라는 이름 아래 공무원 임금이 깎이고, 연금이 삭감됐으며, 청년 실업률은 50%에 육박했습니다. GDP는 전성기 대비 25% 이상 증발했습니다(출처: IMF).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전쟁도 아닌데 이게 가능한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피해를 가장 오래 감당해야 했던 건 그리스의 젊은 세대였습니다. 그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그 혜택을 누리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온전히 감당해야 했었습니다.

베어링 위기의 책임자 토마스 베어링이 기소되지 않고 부유하게 삶을 마감한 것처럼, 그리스에서도 재정 부실을 방치하거나 설계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부유했기 때문에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공부할수록 금융 위기의 구조는 놀라울 만큼 단순합니다. 과도한 부채, 위험의 과소평가, 기관 구제, 그리고 서민 부담. 1890년과 2010년,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같았습니다. 앞으로도 이 공식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과연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yQvhOf5E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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