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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영국 금융공황 (투기버블, 뱅크런, 도덕적해이)

by 재미있는경제사 2026. 5. 13.

주변에서 너도나도 코인으로 수익을 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 혹시 그 자리에서 괜히 초조해진 적 없으셨습니까? 저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사실은 200년 전 런던 사람들이 느꼈던 것과 정확히 같다는 걸, 1825년 영국 금융공황을 들여다보면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의심을 하게 됩니다.

투기버블: 사람들은 왜 항상 같은 함정에 빠질까

1825년 런던은 지금의 서울 강남 부동산 열풍과 묘하게 겹쳐 보이는 도시였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경제는 활기를 띠었고, 산업혁명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부는 사람들에게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이번엔 다르다"는 믿음, 바로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런던 투자자들은 라틴아메리카 신생국들이 발행한 채권에 열광했습니다. 연 6%의 이자율을 제시하는 이 채권들은 중산층에게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고, 거기에 더해 광산, 운하,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의 개발권까지 온갖 투기성 상품이 쏟아졌습니다. 1824년 말까지 영국에서만 600개가 넘는 신규 회사가 설립되었을 정도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유동성 과잉(Excess Liquidity)이었습니다. 유동성 과잉이란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자산 가격이 실제 가치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지방 은행들이 금 보유량과 무관하게 지폐를 마구 발행했고, 잉글랜드 은행은 이를 방치했습니다. 시중에 돈이 넘쳐나니 사람들은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2020~2021년 코로나 직후 주식시장이 폭등하던 시절을 겪었습니다. 제 주변 친구들이 "우리만 돈을 못 버는 것 같다"고 했고, 저 역시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에 사로잡혀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경험이 있습니다. FOMO란 남들은 다 기회를 잡는데 나만 소외되고 있다는 두려움을 뜻합니다. 그 감정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1825년 런던 시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 다뤘던 그레고르 맥그리거라는 사기꾼이 중앙아메리카에 포야이스라는 가상의 왕국이 존재한다고 속이며 채권을 팔았을 때, 교육받은 엘리트들조차 의심하지 않고 돈을 맡겼으니까요.

 

1825년 금융 공황을 야기했던 투기버블은 다음과 같이 형성되었습니다.

  • 전쟁·위기 종료 이후의 과잉 낙관주의
  • 중앙은행 또는 민간 금융기관의 신용 팽창
  • "이번엔 다르다"는 집단적 믿음
  • 규제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투기 상품의 등장
  • FOMO에 의한 일반 대중의 뒤늦은 참여

국제결제은행(BIS)의 분석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신용 급팽창 이후 3~5년 이내에 금융 위기가 발생하는 패턴이 반복되어 왔습니다(출처: 국제결제은행).

뱅크런: 신뢰가 무너지는 데는 단 하루면 충분합니다

1825년 12월 14일, 런던의 저명한 은행인 폴, 쏜튼 앤 컴퍼니가 지급 불능을 선언했습니다. 그 하루 이후 영국 전역에서 벌어진 일은 지금 봐도 아찔합니다. 일주일 만에 70개가 넘는 은행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뱅크런(Bank Run)입니다. 뱅크런이란 예금자들이 은행이 파산할 것을 두려워해 동시에 예금 인출을 시도하는 현상으로, 이로 인해 실제로 멀쩡한 은행조차 도산하게 되는 자기실현적 위기를 말합니다. 소문 하나가 공황을 만들고, 그 공황이 다시 더 큰 파국을 현실로 만드는 구조입니다.

잉글랜드 은행의 금 보유고는 단 며칠 만에 1,000만 파운드에서 100만 파운드 미만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당시 이사 존 파머는 불가능한 선택 앞에 섰습니다. 금을 지키기 위해 대출을 죄면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고, 대출을 풀면 은행 자체가 먼저 파산합니다. 그는 결국 후자를 택했고, 의회 승인도 없이 1파운드 지폐를 긴급 발행하는 법적 회색지대까지 감수했습니다.

이때 탄생한 개념이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입니다. 이는 금융 시스템이 위기에 처했을 때 중앙은행이 민간 은행에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말합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취한 행동,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때 각국 중앙은행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한 것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2020년 코로나 폭락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가가 며칠 만에 30~40% 급락하자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이 손절매를 쏟아냈고, 그 공포 자체가 추가 하락을 불렀습니다. 전염(Contagion)이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전염이란 한 금융 기관 또는 시장의 위기가 심리적 공황을 통해 무관한 기관과 시장으로 확산되는 현상입니다. 1825년에는 말과 배로 전달되던 공황이 지금은 알고리즘 속도로 번집니다. 단 하나의 SNS 게시물이 수십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순식간에 지워버리는 시대입니다.

도덕적해이: 구제금융은 다음 위기의 씨앗일까

존 파머의 결단은 영웅적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보다 더 큰 위기를 예약한 것이었을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란 위험의 결과를 직접 부담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길 때, 당사자가 더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잘못되면 어차피 국가가 구해주겠지"라는 심리입니다. 1825년 잉글랜드 은행의 구제 개입 이후, 이 심리는 금융 시스템 안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돌아보면 이 패턴이 다시 보입니다.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했지만, 그보다 더 큰 AIG와 여러 대형 은행들은 정부 자금으로 살아남았습니다. 투자로 막대한 이익을 거뒀던 주체들은 위기 때 손실을 사회화했고, 그 비용은 결국 납세자의 몫이 되었습니다. 미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구제금융 패키지 규모는 7,000억 달러(TARP)에 달했습니다(출처: 미국 연방준비제도).

솔직히 이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기억인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떠올립니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나라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장롱 속 돌반지와 결혼반지를 꺼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인 정성과 국가가 투입한 막대한 공적자금은 정작 위기를 초래한 부실기업과 은행들을 회생시키는 데 쓰였습니다. 잘못은 경영진과 금융 시스템이 저질렀는데, 그 뒷수습은 고스란히 평범한 시민들의 몫이 된 것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는 독버섯이 자라난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위기가 오면 국가가 혈세를 투입해 시스템을 살려낼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는 순간, 자본은 더욱 무모한 투기 속으로 뛰어듭니다. 1825년 영국에서 시작된 이 구제금융의 공식은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쳐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탐욕과 공포라는 인간 본성의 사이클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교훈을 주지만, 인간의 욕심이 그 교훈을 매번 덮어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1825년을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금융 시스템은 발전했지만, 그 위에서 움직이는 인간의 심리는 200년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 위기가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지금 내가 하는 투자가 기회를 포착한 것인지, 아니면 FOMO에 떠밀려 시한폭탄을 받아 든 것인지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7-tjiwXr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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