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계좌를 열어두고 매수 버튼을 눌렀는데 매도가 되어버린 바보같은 경험, 주식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은 있지 않으십니까. 제가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초년생으로 첫발을 내딛기 위해 치열하게 뉴스를 보며 세상을 배우던 2013년 겨울, 단 2분 만에 멀쩡하던 중견 증권사 한 곳이 시장에서 완전히 증발해 무너지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거창한 횡령이나 부도가 아니라, 직원의 손가락 클릭 하나, 그 안의 입력된 숫자 '0'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최종 법정 결론이 나오는 데는 무려 10년이라는 지독한 세월이 걸렸습니다.

팻 핑거, 숫자 하나가 462억을 날리다
2013년 12월 12일 아침, 한맥투자증권의 직원 한 명이 파생상품 자동거래 시스템에 수치를 입력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결함을 저질렀습니다. 옵션 가격 산출에 필요한 이자율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잔여 일수를 365로 나눠야 하는데, 분모에 실수로 숫자 '0'을 입력한 것입니다. 수학적으로 분모가 0인 식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은 오류를 멈추는 대신 0에 가까운 극소값으로 계산을 강행했고, 그 결과 현재 시장의 모든 거래에서 엄청난 이익이 난다는 완전히 미쳐버린 판단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파생상품 자동거래 시스템이란, 사람이 직접 눈으로 호가창을 보며 매수·매도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설정한 조건에 따라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1초에 수천, 수만 건씩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속도와 효율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지만, 잘못된 오염된 입력값이 들어가면 그 파멸적인 오류도 빛의 속도로 증폭됩니다. 직원이 실수를 알아채고 비명을 지르며 컴퓨터 본체의 전원 코드를 뽑아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43초였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팔아야 할 것은 터무니없이 싸게, 사야 할 것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무려 3만 7,900건의 계약이 체결되어 버렸습니다. 굵은 손가락 때문에 키보드를 잘못 눌렀다는 뜻의 팻 핑거가 불러온 대형 재앙이었습니다.
이 일화를 공부하면서 저는 개미투자자로서 제 계좌에서 벌어졌던 부끄러운 주문 실수들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습니다. 몇 년 전 한창 장이 좋았을 때, 급등하는 종목을 보고 흥분해서 급하게 매수하려다 실수로 매도 버튼을 누르고는 "어? 내 주식 어디 갔지?" 하며 멍청하게 모니터를 바라보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원하는 가격보다 한 줄 아래에 주문을 넣으려다 마우스를 잘못 미끄러뜨려 가장 불리한 시장가로 진입해 앉은자리에서 수십만 원을 날리고 자취방 침대에서 이불킥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 같은 방구석 개미가 저지르는 실수는 고작 몇십만 원짜리 쓰린 속풀이로 끝나지만, 1초에 수만 번을 거래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시스템이 실수를 저지르면 단 2분 만에 회사 하나를 통째로 지워버릴 수 있다는 그 압도적인 속도와 규모의 파괴력에 심장이 서늘해졌습니다.
파생상품 시장의 냉혹함, 구제 신청의 벽
사태가 터지자 한맥투자증권 대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즉시 한국거래소에 전화를 걸어 거래 취소를 읍소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차가웠습니다. "취소는 불가능하니 법이 정한 구제 신청을 하라"는 것이었죠. 구제 신청이란 명백한 착오로 인한 오류 거래를 사후에 무효화할 수 있도록 마련된 '착오 거래 구제 제도'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었습니다. 수만 건의 거래를 일일이 건별로 따로 신청해야 했고, 당일 오후 3시 30분이라는 마감 시간까지 완료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었습니다. 고작 몇 시간 안에 3만 7,900건을 건별로 처리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수백 건만 겨우 처리하고 나머지는 피눈물을 흘리며 포기해야 했습니다.
한맥투자증권이 마지막으로 필사적으로 매달린 것은 이 오류 거래의 틈새를 노려 단 몇 초 만에 가장 큰 이익을 챙겨간 외국계 금융사들과의 협상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한 대형 헤지펀드는 한맥의 실수 덕분에 앉은자리에서 약 340억 원의 날로 먹는 수익을 거뒀는데, 그들은 반환을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는 정상적인 알고리즘 시스템으로 정당하게 거래에 응했을 뿐, 너희가 멍청해서 잘못 넣은 돈을 우리가 왜 돌려주냐"는 논리였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월스트리트의 생리가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기득권과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이 주식 시장이 얼마나 철저하고 잔인한 '알고리즘의 사냥터'인지를 다시 한번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2012년 미국의 나이트 캐피탈 역시 알고리즘 트레이딩 오류 하나로 단 45분 만에 4억 4천만 달러를 날렸고, 우리가 잘 아는 2018년 삼성증권 배당 사고(유령주식 배당 사태) 역시 직원의 단순 입력 실수가 터지자마자 다른 기관들과 발 빠른 개미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주식을 사정없이 던져대며 시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단 한 걸음이라도 삐끗해서 틈을 보이면, 하이에나처럼 냄새를 맡고 달려들어 내 살점을 뜯어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포식자들이 24시간 눈을 부릅뜨고 대기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금융 시장이라는 사실을, 저는 지난날 코인판과 주식판에서 겪은 수많은 손절의 기억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사냥터, 더 무방비해진 인간
결국 한맥투자증권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파산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후에도 파산관재인은 해당 외국계 금융사를 상대로 "360억 원 중에서 제발 우리 직원들이 길거리로 나앉지 않게 100억 원만이라도 돌려달라"며 눈물 어린 소송을 10년 동안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끝내 거래를 되돌릴 수 없다며 외국계 금융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부당이득 반환 청구가 인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도덕성이나 실수 여부를 떠나, 일단 시장의 규칙 안에서 체결된 거래는 유효하다는 법의 엄격함이 우선이었습니다.
오류가 발생한 거래나 데이터를 이전 상태로 깨끗하게 되돌리는 조치를 '롤백(Rollback)'이라고 합니다. 주식시장에서도 이런 명백한 재앙적 오류 거래에 대해 거래소가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법원의 판결을 보며 미혼 남성 개미로서 아주 깊은 환멸과 현실적인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분모에 0을 넣으면 수식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중학생도 아는 사실인데, 그 단순한 필터링 로직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부실한 증권사 시스템의 죄를, 그리고 그 빈틈을 칼같이 파고들어 남의 피눈물을 돈으로 바꾼 외인들의 탐욕을 법이 정당하다고 선언해 준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이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나서야 부랴부랴 파생상품 시장의 착오거래 구제 제도를 개선하고 안전장치를 보완했습니다.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파생상품 시장에서 컴퓨터 알고리즘이 차지하는 거래 비중은 매년 무서운 속도로 폭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세대는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 주식을 사고파는 가장 편리한 디지털 금융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의 속도가 빨라진 만큼 우리 같은 인간 개미들은 거대 컴퓨터 무리들 앞에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맨몸으로 던져진 무방비 상태에 더 가깝게 노출되어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야근하며 모은 소중한 피 같은 돈을 주식에 밀어 넣는 순간, 화면 저편에서는 인간의 감정이 완전히 거세된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프로그램들이 0.001초 단위로 눈을 부릅뜨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숨 한 번 쉬는 사이에 수천 번의 연산을 하며 우리의 작은 실수, 찰나의 조급함을 받아먹기 위해 덫을 놓고 있는 것이죠. "이 정도면 안전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장을 대했다가는, 30년 넘게 다져온 한 기업의 역사조차 단 143초 만에 증발해 버리는 이 냉혹한 사냥터에서 내 소중한 자산이 언제 어떻게 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해 지곤 합니다.
한맥투자증권의 공중분해 사건은 단순한 한 직원의 실수가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과 금융 시스템의 차가운 부재가 결합해 만들어낸 대참사였습니다. 주식 시장은 우리의 사정이나 눈물, 억울한 실수 따위에는 단 1밀리리터의 관심도 주지 않는 지독하게 냉정하고 외로운 곳입니다. 개미투자자로서 저는 이 사건을 수없이 복기하며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내가 매수, 매도 버튼을 누르는 그 가벼운 손가락 끝에 내 인생과 소중한 자취방 전세 자금, 미래의 경제적 자유가 통째로 걸려있다는 그 무거운 책임감을 단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완벽하게 정신을 차리고 투자를 한다 해도, 시스템의 오류나 타인의 실수로 생긴 불똥이 언제든 불공정하게 내 계좌로 튀어와 나를 태워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불완전한 시장입니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선은 철저한 분할 매수와 매매 전 주문 창을 세 번씩 다시 확인하는 조심성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