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스로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200년 전 런던 시민들도, 불과 10년 전 실리콘밸리를 바라보던 저도,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기는 거짓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보고 싶었던 미래에서 시작됩니다. 1822년 런던 증권 시장에서 250명의 사람들이 전 재산을 들고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로 향하는 배에 올랐을 때, 그들을 속인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믿고 싶었던 미래였습니다. 저는 테라노스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 오래된 교훈이 200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이미지 조작 - 실체 없는 나라가 국채를 발행한 방법
1822년 스코틀랜드의 한 항구에서 250명이 배에 올랐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이민자가 아니었습니다. 의사, 변호사, 은행가, 숙련 기술자로 구성된 야망 있는 중산층이자 지식인들이었고, 손에는 토지 증서를, 트렁크에는 전 재산을 싣고 있었습니다. 목적지는 '포야이스'라는 독립국이었는데, 문제는 그 나라가 지도 위에만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이 사기의 설계자는 그레고르 맥그리거였습니다. 그는 영국군 장교 출신으로 대위 계급을 달았지만 스스로를 대령이라 불렀고, 포르투갈 기사 칭호를 달고 화려한 마차를 타며 귀족 행세를 했습니다. 그의 핵심 기술은 이미지 조작(image manipulation), 즉 사실의 포장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이미지 조작이란 실제 사건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철저히 통제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후퇴는 전략적 철수가 되고, 도주는 용감한 탈출이 되는 식이었습니다.
맥그리거는 단순한 땅이 아닌 국가 전체의 상징체계를 만들어냈습니다. 355쪽짜리 이민 안내서를 발간했고, 스코틀랜드 왕실 문장을 연상시키는 국기와 문장을 제작했으며, 유명 조각사가 인쇄한 포야이스 달러 지폐까지 발행했습니다. 이민자들은 출발 전에 진짜 파운드를 이 가짜 화폐로 환전했습니다. 화폐의 존재 자체가 국가의 실재를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금융 시장이 이 사기에 동참했다는 사실입니다. 1822년 10월, 맥그리거는 런던 증권 시장에서 20만 파운드 규모의 포야이스 국채를 발행했습니다. 국채(sovereign bond)란 국가가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으로, 그 자체로 국가의 존재를 전제합니다. 액면가 100파운드짜리 채권이 81.5파운드에 발행되었고 연 6% 이자가 붙어 실질 수익률은 약 7.36%였습니다. 영국 국채보다는 높지만 진짜 남미 국가 채권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사기의 핵심은 탐욕이 아니라 절제였습니다. 수익률이 너무 높지 않아서 오히려 합리적인 투자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런던 금융가에는 포야이스 사무소가 생겼고, 신문은 채권 가격을 보도했으며 은행은 포야이스 증서를 담보로 받아들였습니다. 언론과 금융 기관이 그 존재를 전제한 채 움직이는 순간, 포야이스는 한 사람의 거짓말이 아닌 시스템이 공인한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1820년대 런던 시장의 투기 광풍 속에서 남미에 새로운 나라가 생기는 것은 일상적인 뉴스였기 때문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출처: Bank of England).
포야이스 사기에서 이미지 조작이 성공한 핵심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국기, 화폐, 안내서 등 국가 상징체계를 완벽하게 구축해 실체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 수익률을 '딱 믿을 만한' 수준으로 설정해 합리적 판단을 흉내 내게 했습니다.
- 언론과 금융 기관이 검증 없이 존재를 전제하며 사기를 제도적으로 인증했습니다.
인지 부조화 - 사기꾼을 변호한 피해자들
배가 모스키토 해안에 닿았을 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안내서에 그려진 대로, 오페라 하우스도 포장도로도 의회 건물도 없었습니다. 원시 정글과 모기떼만이 이민자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런 참혹한 현실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민자들이 처음에는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입니다. 인지 부조화란 자신의 믿음과 현실 사이의 모순이 발생할 때, 현실을 바꾸는 대신 믿음을 지키는 방향으로 심리가 작동하는 현상입니다. 이민자들은 수도에서 구조선이 올 것이라고 기다렸습니다. 집을 팔고, 저축을 털고, 포야이스 달러로 환전하고, 가족을 데려온 자신의 선택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1823년 5월 구조선이 왔을 때는 250명 중 180명 이상이 이미 사망한 뒤였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정글에서 아이를 잃은 생존자들 중 일부가 맥그리거를 변호하는 진술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맥그리거가 배신당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자기 인생 전부를 건 결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사기꾼을 변호하는 편이 심리적으로 덜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맥그리거는 프랑스로 도망쳐 같은 사기를 시도했지만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에서 서류가 완벽하다는 이유로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이후 베네수엘라로 돌아간 그는 독립 전쟁 영웅으로 맞아들여져 장군 직위와 군인 연금을 받으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처벌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연구에 따르면 확인하는 데 드는 비용이 믿는 데 드는 비용보다 훨씬 클 때 사람들은 믿음을 선택한다고 합니다(출처: NBER). 사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검증회피와 시스템의 공인
저는 테라노스(Theranos) 사태가 떠올랐습니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하는 검은 터틀넥을 입고 "피 한 방울로 250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수조 원의 투자를 끌어모았습니다. 저 역시 테라노스의 혁신적인 마케팅에 눈이 멀어 진단 기기 '에디슨' 내부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그녀의 인터뷰 기사들은 200년 전 런던 거리에 뿌려진 포야이스 이민 안내서의 완벽한 현대판이었습니다.
테라노스는 기술의 복잡성을 검증 차단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진단 기기는 영업 비밀이라는 명목 하에 블랙박스(black box)로 취급되었습니다. 의학 전문가들조차 내부 기술을 검증할 수 없었습니다. 21세기에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보 접근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의 복잡성이 검증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가 더 위험합니다.
일반적으로 전문가가 이사진에 있으면 검증이 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형식의 권위(formal authority)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형식의 권위란 실제 내용에 대한 검토 없이 직함이나 소속 기관의 명성만으로 신뢰가 부여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테라노스 이사진에는 전직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의료 기술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맥그리거의 포야이스에 저명한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던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테라노스를 의심하는 사람에게 대중은 "당신은 혁신을 모르는 사람"이라며 오히려 손가락질했습니다. 선의와 기대감이 시장의 과열과 만나면 비판적 사고 자체를 마비시킨다는 것을 저는 그 시절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포야이스 사태는 맥그리거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일이었을 겁니다. 신문은 포야이스 채권 가격을 보도했고, 은행은 포야이스 증서를 담보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구조가 사기를 개인의 범죄가 아닌 시스템의 실패로 만들었습니다. 기관이 존재를 전제하고 움직이는 순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테라노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 FDA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술의 실현 가능성을 보증하는 신호로 읽혔습니다. 언론이 "혁신"이라 보도하는 순간, 의심하는 사람은 오히려 시대를 모르는 사람으로 손가락질받았습니다.
사기를 가려내는 데 유효한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핵심 기술이나 사업 구조를 외부 전문가가 실제로 검증할 수 있는가
- 수익률이나 성과 지표가 "믿을 만하게 적당한" 수준으로 설계되어 있지는 않은가
- 해당 상품이나 프로젝트를 의심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는 분위기는 아닌가
- 이사진, 언론 보도, 기관 인증 등 "형식의 권위"가 내용 검증을 대신하고 있지는 않은가
1825년 남미 채권 시장 전반이 붕괴하고 영국 은행의 10% 이상이 무너진 공황은 포야이스 하나의 결과가 아니었지만, 포야이스는 그 도화선 중 하나였습니다. 시스템이 사기를 공인했을 때 그 청구서가 얼마나 넓게 퍼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820년대 런던 금융 위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의 금융사 아카이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영국 금융행위감독청 FCA).
200년 전 포야이스 이민자들이나 테라노스에 수조 원을 투자한 기관 투자자들이나, 틀린 것은 지능이 아니라 질문의 방향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얼마나 좋은가"가 아니라 "이 나라가 실제로 존재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했습니다. 워런 버핏의 "이해할 수 없는 비즈니스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낡은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복잡성이 검증의 장벽이 되는 지금, 그 원칙은 오히려 더 날카롭게 살아 있습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복잡성은 더 강력한 검증 차단 수단이 됩니다. 지도에 없는 낙원은 항상 마음속에 먼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낙원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돈이 아니라 선택의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