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유럽 최대 규모의 은행으로 평가받던 피렌체의 거대 은행 가문들이 단 한 명의 최고 권력자가 내린 "갚지 않겠다"는 선언 한 방에 연쇄적으로 파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1345년 1월에 발생한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의 대규모 채무 불이행 사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700년 전 중세 유럽 한복판에서 터진 국가 부도의 모습이, 오늘날 글로벌 위기 속에서 국가들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구조와 너무나도 명확하게 닮았기 때문입니다.

채무자이면서 심판관이었던 에드워드 3세
14세기 초반, 바르디 가문과 페루치 가문은 단순한 은행이 아니었습니다. 교황청의 세금을 유럽 전역에서 징수해 로마로 송금하고, 잉글랜드 왕실의 가계 지출을 조달했으며, 런던에서 나폴리까지 귀족과 수도원의 예금을 관리했습니다.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시스템적 중요 금융기관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SIFI란 규모와 연결성이 워낙 커서 이 기관이 무너지면 금융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는 기관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그런 용어가 없었을 뿐, 바르디와 페루치가 바로 그 존재였습니다.
에드워드 3세는 1337년 프랑스와의 전쟁, 즉 백년전쟁의 초기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대출을 요청한 게 아니었습니다. 잉글랜드 양모 수출 면허와 관세 징수권을 협상 카드로 꺼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 양모는 피렌체와 브뤼헤의 직물 산업을 먹여 살리는 핵심 원자재였습니다. 이 면허를 잃는다는 건 바르디와 페루치 입장에서 영국 내 사업 기반 전체를 잃는 것과 같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 즉 거절하면 더 크게 잃는 상황에서 내리는 결정은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결국 1336년 9월부터 1337년 12월까지 두 가문이 빌려준 돈만 8만 2천 파운드에 달했고, 이후로도 대출은 계속 불어났습니다. 담보로 제공된 것은 금이나 토지가 아니라 미래 수익, 즉 항구의 관세와 의회가 승인한 세금이었습니다. 이를 현대 금융에서는 수익 담보부 채권구조라고 부릅니다. 수익 담보부 채권이란 자산 자체가 아닌 미래에 발생할 현금 흐름을 담보로 잡는 방식을 의미하는데, 차입자가 그 수익원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을 때 채권자는 사실상 회수 수단을 잃게 됩니다.
실패는 무능함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
에드워드 3세는 전쟁이 길어지자 냉정한 계산을 했습니다. 채무 불이행+을 선언해도 정치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채무 불이행이란 국가나 채무자가 원리금 상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르디 가문과 페루치 가문은 외국인이었고, 영국 의회와 대중은 이미 이탈리아 은행가들이 너무 많은 특권을 누린다는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에드워드는 이 여론을 수년에 걸쳐 의도적으로 키워왔고, 지급 중단의 정치적 비용을 사실상 제로로 만들어 놓은 뒤 행동에 나섰습니다.
페루치 가문은 1343년 먼저 무너졌고, 바르디 가문은 1345년 1월 지급 정지를 선언했습니다. 세 번째 대형 피렌체 은행인 아차이올리 가문은 에드워드에게 큰돈을 빌려준 적도 없었지만 같은 해 함께 붕괴했습니다. 뱅크런, 즉 예금자들이 일제히 자금을 인출하려 몰려드는 현상 앞에서는 구체적인 부실 원인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신뢰가 사라진 시장에서는 모두가 동시에 출구를 향해 달려가고, 그 과정에서 건전한 기관도 함께 쓸려 내려갑니다.
역사를 돌아보면서 제가 가장 불편하게 느꼈던 지점이 여기입니다. 바르디와 페루치는 중세 유럽 최고의 금융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국가 부도 리스크에 대한 역사적 사례도 있었고, 데이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대출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탐욕" 하나였다면 교훈이 단순했겠지만, 실제 구조는 훨씬 복잡했습니다.
이 실패의 핵심은 자산 집중 리스크였습니다. 자산 집중 리스크란 특정 채무자나 자산군에 대한 노출이 지나치게 커져, 그 하나가 무너졌을 때 전체가 함께 무너지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바르디 가문의 경우 에드워드 3세에게 진 채권이 90만 골드 플로린, 페루치는 60만 골드 플로린이었는데, 이 안에는 이자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법상 공개적인 이자 수취는 고리대금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자는 '선물'이나 '지연 보상' 등의 명목으로 포장되었습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전체 채무의 3분의 2가 이렇게 위장된 비용이었습니다.
더 치명적이었던 것은 에드워드 3세가 채무자이면서 동시에 담보 수익의 통제권자였다는 점입니다. 그가 지급을 중단하면 바르디와 페루치가 관세를 징수할 권한도 자동으로 사라졌습니다. 회수 수단이 채무자의 선의에 달려 있는 구조, 이것이 두 가문을 구조적으로 취약하게 만든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분산투자, 지금 내 포트폴리오는 안전한가
제 경험상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도 가장 많이 무시됩니다. 1343년의 피렌체 예금자들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기관에 돈을 맡겼습니다. 문제는 그 기관이 단일 거대 차입자, 즉 잉글랜드 왕실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금융에서는 이를 집중 위험이라고 부릅니다. 특정 차입자, 특정 자산, 특정 국가에 포트폴리오가 지나치게 몰려 있을 때 그 대상이 흔들리면 분산의 이점이 사라지는 위험을 말합니다. 바르디 가문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금융 전문가들이었음에도 이 집중 위험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에드워드 3세라는 차입자가 너무 거대했고, 그가 제공하는 양모 면허와 무역 특권이 너무 달콤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도 얼마 전까지는 선진국 국채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국채, 독일 국채처럼 기축 통화국이 발행한 채권은 디폴트 가능성이 없다는 논리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1년 미국의 부채 한도 협상 교착 상태가 신용 등급 강등으로 이어졌을 때, 저는 그 논리에 처음으로 금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국가 신용도란 결국 정치적 의지의 함수라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체감했습니다.
1998년 러시아 사례는 제가 이 주제를 공부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케이스입니다. 러시아는 당시 GKO라는 단기 국채에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자를 붙여 외국 자본을 끌어들였습니다. 에드워드 3세가 양모 면허를 미끼로 대출을 강요한 것과 구조가 다르지 않습니다. 높은 수익률이라는 당근이 위험 신호를 가렸고,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하자 그 채권을 대거 보유하고 있던 LTCM이 사실상 하룻밤 사이에 붕괴했습니다. LTCM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설립한 헤지펀드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두뇌들도 집중 위험 앞에서는 바르디 가문과 같은 결말을 맞았습니다.
제가 이 역사를 공부하면서 내린 실질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단일 국가 채권에 자산의 과도한 비중을 두지 않는다
- 담보가 미래 수익 흐름에 의존하는 구조의 금융 상품은 각별히 경계한다
- 금융 기관이 특정 차입자에 구조적으로 의존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 채권자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신호를 놓치지 않는다
마지막 항목이 특히 중요합니다. 에드워드 3세는 채무 불이행 수년 전부터 이탈리아 은행가들에 대한 영국 내 반감을 키웠습니다. 채무 불이행을 위한 정치적 환경은 실제 사건보다 훨씬 앞서 조성됩니다. 제 경험상 이 신호를 미리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손실을 피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국가가 거대 채무자가 되고, 금융 기관이 그 국가를 거절할 수 없게 되고, 예금자들이 가장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되는 구조는 1343년에도, 2008년에도, 그리고 아마 지금 어딘가에서도 작동하고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자신의 자산이 그 사슬의 어느 지점에 연결되어 있는지 점검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