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당시 주식 창을 열어보는 것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공포였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전 세계의 비행기가 지상에 묶였고, 코스피 지수는 연일 바닥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추락했으며, 메신저 단톡방의 지인들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주식을 던지며 시장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온 세상이 파멸적인 비관론에 사로잡혀 자산을 내팽개치던 그 혼란의 최정점 한복판에서, 누군가는 거대한 매수 주문을 조용히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 차분한 눈으로 그 대폭락의 기록을 복기해 보면, 그 보이지 않는 손들은 결국 역발상 투자의 개척자인 존 템플턴의 철학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역발상 투자, 미친 짓이었을까
1939년 9월, 아돌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과 함께 인류사 최악의 재앙인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즉각 집단적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고, 투자자들은 자산의 가치를 불문하고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투매를 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제가 그 아비규환의 객장에 서 있었더라도 본능적인 두려움에 휩쓸려 똑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위기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무리를 따라 도망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26세의 무명 트레이더였던 존 템플턴은 대중의 질주와 완벽하게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는 월가의 브로커에게 전화해 나스닥과 뉴욕 증시에서 주당 1달러 미만에 거래되는 모든 동전주와 부실주를 예외 없이 100달러씩 매수하라는 파격적인 지시를 내렸습니다. 총투자 자금은 차입금을 포함해 1만 달러로, 104개 기업의 포트폴리오 중 34개 기업은 이미 장부상 완전한 파산 선고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주변의 동료 엘리트들은 그가 이성을 잃고 도박을 벌이고 있다며 손가락질을 해댔습니다.
하지만 템플턴의 시선은 개별 기업의 자산과 부채, 당기순이익 수치를 기록한 표면적인 재무제표의 파산 기록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주목한 데이터는 미국이라는 국가 경제 시스템 전체가 가진 본질적인 기초체력, 즉 펀더멘털이었습니다. 전쟁의 불길이 전 세계로 번질수록 군수 물자 조달의 핵심 기지인 미국의 제조업 공장들이 강제로 풀가동될 수밖에 없으며, 이 거대한 공급망 사슬 속에서는 아무리 한계 선상에 몰린 부실기업이라 할지라도 생존을 넘어 막대한 유동성의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정교한 거시경제적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회복력, 단순한 운이 아닌 구조적 탄력성에 대한 신뢰
전쟁의 거대한 포성이 멈추고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 4년 뒤, 존 템플턴이 구축했던 1만 달러의 부실주 바구니는 정확히 4만 달러의 거대 자산으로 치솟아 있었습니다. 단순한 요행이나 시대적 행운으로 치부하기에는, 그가 시장을 대했던 원칙과 사후 데이터의 궤적이 지나치게 정교하고 과학적이었습니다. 그는 군중들이 패닉셀(공포 매도)을 단행할 때 형성되는 시장 가격은 기업의 내재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의 마비된 심리가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가격 왜곡일 뿐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존 템플턴은 이 성공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195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템플턴 성장 펀드'를 출시하여 장기간 독보적인 초과 수익률을 기록하며 월가의 전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그가 위대했던 이유는 전 세계 투자자들이 월스트리트의 화려한 간판에만 매몰되어 있던 1960년대에, 전후 폐허가 된 일본 시장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글로벌 분산 투자를 과감하게 실행했다는 점입니다. 패전국이라는 낙인 뒤에 숨겨진 일본 노동자들의 높은 교육 수준과 정부의 강력한 산업화 의지 데이터를 남들보다 먼저 읽어내며, 리스크를 분산하고 복리의 대마왕이 되는 길을 스스로 증명해 냈습니다.
저는 나름의 재무 독학을 이어오면서 이 글로벌 분산 투자와 회복 탄력성의 메커니즘을 제 계좌에 대입해 보려 숱하게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책을 읽고 "비관론이 극에 달했을 때가 최고의 매수 시점"이라는 명제를 머리에 박아두어도, 정작 내 피 같은 월급이 투입된 종목이 하락 곡선을 그리면 이성이 마비되고 대중의 공포에 동화되던 나약한 순간들이 수없이 반복되었습니다. 템플턴의 위대함은 기막힌 기법의 보유가 아니라, 온 시장이 피를 흘릴 때 대중의 광기를 거슬러 자신의 데이터 확신을 묵묵히 실행에 옮긴 철저한 감정 통제력에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비관론이 극에 달한 시장, 지금은 어디인가
지나고 보면 늘 선명하지만 그 한복판에 서 있을 때는 눈이 멀어버리는 것이 자산 시장의 생리입니다. 제가 2020년 3월 팬데믹 쇼크의 현장 속에서 목격했던 풍경 역시 지독한 두려움의 전염성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였습니다. 코스피 지수가 1,500선 밑으로 수직 낙하하고 미국 증시가 서킷 브레이커를 연달아 터뜨릴 때,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는 온통 "인류 문명이 멈췄으니 이번 위기는 과거의 금융위기와 완전히 다르다"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당시 시장 참여자들의 극단적인 공포 수치를 나타내는 변동성 지수, 즉 VIX 지수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당시의 최고점인 80 선을 돌파하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능 정지를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존 템플턴이 생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남긴 가장 강력한 유산은 "투자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네 단어는 바로 '이번엔 다르다'이다"라는 엄중한 경고였습니다. 기술이 진화하고 바이러스의 종류가 바뀌며 악재는 매번 다르게 찾아오지만, 그 악재를 마주하는 인간의 탐욕과 공포라는 원초적인 심리 데이터의 변동 규칙은 역사상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연방준비제도를 필두로 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시장을 심폐 소생하기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 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산 가치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전고점을 파괴하며 폭발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역사적인 통계 수치가 증명하듯 고점 대비 20% 이상의 주가 조정을 겪는 전형적인 약세장 국면 이후, 거시적 경제 시스템이 스스로를 치유하며 정상화되는 확률은 언제나 100%에 수렴해 왔습니다. 템플턴이 강조했던 장기적인 경제 사이클과 시스템의 회복 탄력성을 믿고 공포의 정점에서 현금 실탄을 밀어 넣은 자들은 거대한 부의 이동을 이뤄냈고, 눈먼 군중과 함께 패닉셀을 선택한 개미들은 회개장 탈출 이후 재진입 타이밍을 영원히 잃어버린 채 벼락거지로 전락하는 잔혹한 인과응보를 저는 제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존 템플턴의 베팅은 결코 무모한 도박꾼의 요행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낙관론에 취해 화려한 헤드라인을 좇을 때는 자산의 가격에 거품이 끼어 진짜 저평가 우량주를 절대 찾을 수 없으며, 오직 대중의 비명과 비관론이 극에 달해 판이 깨지는 대폭락장 속에서만 자산의 진짜 몸값과 가격 사이의 거대한 왜곡 틈새가 발생한다는 진리였습니다. 예상치 못한 거대 악재로 시장이 갈라지며 대중이 투매를 쏟아낼 때는, 군중 심리에 사로잡히지 않고 시스템의 회복 유동성을 판별해 내는 시야를 길러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