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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듀어 국채코너링 (건국초기, 차관보, 버튼우드)

by 재미있는경제사 2026. 6. 11.

우리는 은행 예금이나 국가가 발행하는 국채를 생각할 때,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 한 내 원금을 절대적으로 보장해 줄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확신하곤 합니다. 그 굳건해 보이는 신뢰가 얼마나 얇은 종이 장부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이 건국된 지 불과 3년 만인 1792년, 뉴욕의 국채와 국립은행의 주식 가치가 단 2주 만에 25% 이상 수직으로 폭락하며 국가 금융 시스템 전체가 통째로 마비되기 직전까지 몰렸던 대참사가 있었습니다. 그 사건의 이면에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소름 끼치도록 반복되는 기득권들의 탐욕, 레버리지, 그리고 무능한 규제의 구멍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건국초기 뉴욕, 규칙 없는 도박판

1792년 당시의 뉴욕 맨해튼 하부 거리를 지금의 화려한 월스트리트 금융가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의 뉴욕은 차가운 바닷바람과 말똥 냄새가 진동하는 진흙투성이의 황량한 항구 도시에 불과했고, 자본을 통제할 공식 거래소나 투자자를 보호하는 규제 기구인 SEC(증권거래위원회) 같은 감시 체계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규칙도, 브레이크도 없는 야만의 장터에서 자본주의 시장은 오직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탐욕과 도박 본능만으로 굴러가는 무법지대였습니다.

이 거대한 도박판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었습니다. 그가 독립전쟁 당시 굶주린 군인들이 생계를 위해 자본가들에게 헐값으로 던졌던 전쟁 부채 증서를 정부 차원의 정식 채권으로 전환해 주겠다는 부채 탕감 정책을 발표하자, 시중의 유동성 자본들이 떼거지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적은 원금으로 거대한 자산을 굴려 자본을 복사해 내는 레버리지광풍이 미 대륙 전체를 집단적 환각 상태로 밀어 넣은 것입니다. 아침에 길거리에서 종이쪽지를 사서 점심에 되팔면 마부의 일 년 치 임금을 하룻밤 사이에 벌어간다는 해괴한 소문이 돌자 시장은 이성을 잃었습니다. 특히 새로 설립될 미국은행의 주식을 선행 매수할 수 있는 청약 증서 격인 스크립이라는 종이 쪼가리 가격이 불과 몇 주 만에 25달러에서 300달러 이상으로 수직 폭등하면서 광기는 정점으로 치달았습니다.

이 건국 초기 규칙 없는 도박판을 공부하면서, 저가 투자를 막 시작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실질적인 기업의 실적 데이터나 회계 장부의 검증도 없이, 그저 "정부 정책의 수혜주다", "새로운 금융 트렌드니까 무조건 우상향 한다"는 화려한 서사에 포모(FOMO)를 느껴 뛰어들었던 기억 말입니다. 1792년 뉴욕의 말똥 냄새나는 거리를 서성거리며 스크립 종이 쪼가리에 전 재산을 배팅했던 미국의 순진한 서민들이나, 세력들이 쳐놓은 가짜 수급 덫에 걸려 상장폐지를 당하고 눈물 흘리던 지금의 우리 개미투자자들이나 본질은 소름 돋도록 똑같았습니다.

차관보 출신의 윌리엄 듀어, 정보 독점과 공매도 세력의 충돌

이 미친 광란의 투기판 한가운데에서 판을 짜고 주도한 타짜가 바로 미국의 전직 재무부 차관보, 윌리엄 듀어였습니다. 그는 정부 내부의 정책 기밀과 정보 시스템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독점하고 있던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내부자였습니다. 규제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대였기에 그는 자신의 권력을 방패 삼아 향후 특정 시점에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자산을 주고받기로 약속하는 선물 계약 꼼수를 동원해 뉴욕의 국채 시장을 인위적으로 독점 매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수중에 당장 현금이 한 푼도 없어도, 미래의 폭등에 배팅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가짜 포지션을 선점해 두는 수법이었습니다.

현금 실탄이 전무했던 듀어는 이 미친 폭탄 돌리기 판을 유지하기 위해 뉴욕의 대형 은행과 상인들은 물론, 정육점 주인, 농부, 미망인 같은 서민들에게 접근해 월 3~5%라는 고금리 배당을 약속하며 그들의 피 같은 전 재산을 레버리지 자금으로 끌어모았습니다. 하지만 듀어가 타인의 자본을 빌려 인위적으로 미국은행 주식과 국채 가격을 상투권으로 끌어올리는 추악한 작전 수급을 노려보던 거물 경쟁자 리빙스턴 가문이 반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리빙스턴 가문은 현재 보유하지도 않은 주식을 두 달 뒤 고점 가격으로 듀어에게 강제 매도하겠다는 역방향 계약을 체결하며 시장의 돈줄을 서서히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중앙은행이 부실 신용 대출을 동결하고 유동성을 회수하자 주가는 순식간에 25% 이상 바닥으로 처박혔고, 비싼 값에 주식을 받아내야 했던 듀어의 장부는 단 한순간에 처참하게 청산당했습니다.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돈이 말라붙어 결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유동성 위기가 시장을 덮치자, 1792년 3월 9일 윌리엄 듀어는 공식 지급 불능을 선언하고 감옥으로 향했습니다. 거장의 화려한 이름값과 정보 독점 서사만 믿고 전 재산을 위탁했던 정육점 주인과 미망인들의 삶은 하룻밤 사이에 공중분해 되었고, 수백 달러를 호가하던 은행 주식 장부는 단 2주 만에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제가 깨달은 교훈은, 아무리 내 예측의 방향성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더라도 내 통제권을 벗어난 과도한 레버리지 포지션은 소나기 한 방에 흔적도 없이 강제 청산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버튼우드 협정, 공황이 낳은 제도의 시작

뉴욕 전체가 가계 파산의 비명으로 뒤덮이자,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국가 신용의 완전한 파멸을 막기 위해 뉴욕은행의 현금 출납 책임자 윌리엄 시튼에게 긴급 지시를 내려 시장 가격보다 높은 액면가로 국채 물량을 강제 매입하도록 조치했습니다. 국가 권력이 시장의 최종 부실 채권을 대신 떠맡아 유동성을 심폐 소생하는 최종 대부자의 무제한 돈 찍어내기가 금융 역사상 최초로 가동된 순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연방준비제도가 위기 때마다 "대마불사"를 외치며 금융 공룡들의 헐값 된 자산을 세금으로 받아주는 개입의 시발점이 바로 이 사건이었습니다.

수많은 서민 개미들의 재산이 청산당하고 겨우 사태가 진정되자, 살아남은 24명의 뉴욕 주식 중개인들은 규칙과 검증이 배제된 자본 시장은 언제든 타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1792년 5월 17일, 월스트리트 68번지의 거대한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모여 "우리끼리만 고정 수수료를 지키며 신의로 거래하자"는 단 두 문장짜리 규칙을 가죽 장부에 새겼으니, 이것이 세계 최대 자본시장의 심장인 뉴욕 증권거래소를 탄생시킨 역사적인 버튼우드 협정의 실체입니다. 위대한 금융의 역사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사기꾼들에게 탈탈 털린 자본가들의 잔혹한 생존 트라우마 속에서 탄생하게 된 셈입니다.

국가의 신용도나 국채라는 자산의 본질은 금융위기나 하이퍼인플레이션 같은 정치적 격변이 터지는 순간, 거대한 강제력을 동원해 합법적으로 내 돈을 출금 정지시킬 수 있는 기득권들의 프로그래밍된 약속일 뿐입니다. IMF 연구 데이터의 주권 채무 불이행 기록들이 차갑게 증명하듯, 국가라는 거대 채무자 역시 판이 불리하면 언제든 약속을 파기하는 가장 거대한 포식자 주체라는 본질을 개인 투자자들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1792년 뉴욕을 마비시켰던 국채 대공황의 잔혹사는, 자산 시장의 시스템이 아무리 견고하고 안전해 보일지라도 그 이면에서 흐르는 인간의 비이성적인 탐욕과 현금 없는 레버리지 구조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공중으로 분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경제와 투자의 본질은 정교한 수학 공식이 아니라, 정보를 독점한 세력들의 기만과 그 위에서 춤추는 대중의 눈먼 심리학의 연속일 뿐입니다. 내가 안전하다고 믿고 묻어둔 자산들이 혹시 세력들의 부실 대출 돌려막기 덫에 엮여 있는 '현대판 윌리엄 듀어의 국채'는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할 때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m1g8Nc5F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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