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내시경 기술을 보유하며 시장을 독점하던 초우량 기업이, 사실은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재무제표를 스스로 정교하게 속이고 있었습니다. 2011년 전 세계 금융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일본 올림푸스의 잔혹한 분식회계 스캔들 이야기입니다. 올림푸스는 우리가 흔히 알던 단순한 카메라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 내시경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한, 그야말로 기술력이 곧 깡패인 무적의 기업이었죠. 저 역시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기술력이 저렇게 독보적인 회사가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파헤쳐 보니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를 다루는 경영진의 비열한 방식과 조직 내부의 썩어빠진 침묵 문화에 있었습니다.

플라자합의가 만들어낸 함정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 엔화 가치는 불과 수년 만에 미국 달러 대비 거의 두 배 가까이 폭등하는 미친 환율 랠리를 펼쳤습니다. 여기서 플라자합의란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이 달러 강세를 인위적으로 낮추고 엔화와 마르크화 가치를 올리기 위해 맺은 국제 환율 조정 협약입니다. 오직 수출 하나로 먹고살던 일본의 제조업체들에게 이것은 하루아침에 마진과 매출이 반토막 나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고, 올림푸스 역시 이 거대한 쓰나미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카메라와 의료 내시경이라는 탄탄한 본업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수익 공백에 눈이 돌아간 올림푸스 경영진은 부족한 돈을 메우겠다며 금리 스와프와 통화 스와프 같은 복잡한 고위험 파생상품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더 황당한 비극은 그 자본 배분의 무지함에 있었습니다. 올림푸스는 전 세계 경제 주기가 원주율 파이의 1,000배인 3,141일마다 귀신같이 반복된다고 황당한 주장을 펼치던 마틴 암스트롱의 펀드에 무려 29억 엔이라는 거금을 집어넣었습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전액에 가까운 깡통 손실이었고, 이 투자는 훗날 거대한 폰지 사기로 드러났습니다. 올림푸스는 본업 외의 투자에서만큼은 전형적인 주린이 개미처럼 최악의 뇌동매매 판단을 연속으로 내렸고, 1991년 일본의 자산 버블이 처참하게 붕괴하면서 그들이 숨겨야 할 손실은 수백억 엔 규모의 눈덩이로 불어났습니다.
이 올림푸스 경영진의 어리석은 행동을 보면서 저는 과거에 저질렀던 뼈아픈 실책이 떠올라 한숨이 쏟아졌습니다. 몇 년 전 한창 시장이 좋을 때, 저는 "기술력이 세계 최고다", "글로벌 특허를 가지고 있다"라는 주식 유튜버들과 뉴스 기사만 철석같이 믿고 국내 한 제조업 우량주에 꽤 큰 금액을 투자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업 역시 본업의 일시적인 둔화를 메우겠다며 무리하게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정체불명의 바이오 벤처기업 지분을 고점에서 샀다가 박살이 났고, 주가는 지옥으로 처박혔습니다. 본업의 경쟁력이 아무리 훌륭해도, 경영진이 조급함에 눈이 멀어 헛된 파생상품이나 유행하는 테마에 한눈을 파는 순간 기업의 기초 체력은 순식간에 걸레짝이 된다는 것을, 저 역시 계좌의 시퍼런 손실률을 보며 뼈저리게 통감했습니다.
손실은폐, 장부 밖으로 사라진 부실, 그리고 유령들의 거래
1998년, 일본 금융감독원은 기업 자산의 가치를 취득 당시 가격 그대로 장부에 기록하는 원가법에서,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진짜 가치로 평가하는 시가법으로의 회계 기준 대전환을 발표했습니다. 이 룰 변경 하나 때문에 올림푸스가 장부상에 한꺼번에 강제로 인식해야 할 미실현 손실은 무려 950억 엔이라는 파산 규모로 튀어 올랐습니다. 정직하게 구조조정을 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숨길 것인가의 기로에서 올림푸스의 재무 기획팀 주역들인 야마다 히데오와 모리 히사시는 추악한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이들은 조세회피처인 케이맨 제도에 '센트럴 포레스트 코퍼레이션'이라는 특수목적법인, 즉 철저하게 리스크를 숨기기 위한 유령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 유령 회사는 올림푸스가 소유한 가치 없는 걸레짝 금융 자산들을 과거 비싸게 샀던 장부가인 210억 엔에 고대로 사들였고, 그 비밀 자금은 리히텐슈타인의 LGT 은행 대출로 조달했습니다. 물론 그 대출의 담보는 올림푸스가 쥐고 있던 멀쩡한 국채였습니다. 회사 밖으로 손실을 교묘히 빼내 장부를 깨끗하게 세탁하는 수법이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부실을 완벽히 매장하기 위해 전자레인지 용품 업체 같은 엉뚱한 내수 기업들을 허무맹랑한 고가에 인수한 뒤, 부풀려진 무형자산 상각 비용 속에 남은 손실을 조금씩 묻어두는 정교한 방식을 동원했습니다. 2007년 영국 의료기기 업체 자이러스 인수 당시, 통상적인 수준인 2,000만 달러의 무려 30배가 넘는 6억 7,500만 달러(한화 약 7,000억 원)를 정체불명의 케이맨 제도 자문사에 지급한 사건은, 20년간 이어온 이 거대한 쓰레기 부채를 최종적으로 털어내기 위한 사기극의 마지막 퍼즐이었습니다.
저는 이 20년짜리 장부 세탁 과정을 보면서 소름이 돋다 못해 허탈한 감정까지 들었습니다. 우리 같은 일반 개미들이 직장에서 상사에게 깨져가며 모은 돈으로 투자 결정을 내릴 때 손에 쥐는 유일한 무기는 기업이 발행한 공시 자료와 재무제표 시스템뿐입니다. 그런데 세계 일류 기업의 엘리트 재무팀이 작정하고 조세회피처에 특수목적법인을 세우고 인수합병 자문 수수료를 30배씩 부풀려 장부를 마사지해 버리면, 평범한 개미 투자자들은 눈 뜨고 코가 베이는 수준을 넘어 영혼까지 완벽하게 탈탈 털릴 수밖에 없다는 거대한 무력감이 엄습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당기순이익과 적정 의견 보고서가 얼마나 손쉽게 지어질 수 있는지, 자본주의의 추악한 이면을 날것 그대로 목격한 기분이었습니다.
기업문화의 민낯, 외국인 CEO의 14일
2011년 10월 1일, 창립 92년 만에 최초의 외국인 CEO로 마이클 우드포드가 공식 취임했습니다. 당시 올림푸스의 주가는 약 600엔 선을 유지하고 있었죠. 하지만 취임 당일 그에게 건네진 것은 화려한 경영 보고서가 아니라, 일본의 소형 탐사 전문 매체 '팩타'가 폭로한 자이러스 인수의 수상한 유령 자문료 의혹 기사였습니다. 우드포드는 깜짝 놀라 키쿠카와 쓰요시 이사회 의장에게 직접 해명과 특별 감사를 요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싸늘한 묵살과 왕따였습니다. 심지어 심복이어야 할 모리 히사시 부사장은 그의 면전에 대고 "나는 당신이 아니라 키쿠카와 의장을 위해 일한다"며 비웃었습니다. 우드포드는 무늬만 CEO였을 뿐, 기득권 카르텔의 얼굴마담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가 진실을 밝히겠다며 이사회에 공식 서한을 보낸 10월 14일 당일, 취임 단 2주(14일) 만에 전격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 숨 막히는 해임 조치는 일본 대기업 특유의 종신고용제와 폐쇄적인 조직 문화가 낳은 거대한 비극이었습니다. 사기를 주도한 야마다, 모리, 키쿠카와는 경력 전부를 올림푸스 한 곳에만 바친 골수 근속자들이었고, 그들만의 끈적한 연대감과 충성심이 내부 통제 시스템을 완벽하게 마비시켰습니다. 내부 고발자를 죄인 취급하며 이방인을 단 14일 만에 축출해 버린 이 카르텔의 민낯이 세상에 드러나자, 올림푸스의 주가는 한 달 사이 80%가 폭락하며 115엔까지 처박혔습니다. 사기의 전모가 드러난 뒤 주역들은 법정에 섰지만, 황당하게도 일본 법원은 "개인적인 횡령은 없었고 회사를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온정주의적 판결로 전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실형을 면해 주었습니다. 독박 손실을 본 전 세계 투자자들의 피눈물은 어디에도 보상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상장사들도 대주주 일가나 내부 고위 임원들이 횡령을 저지르거나, 개미들의 지분 가치를 걸레짝으로 만드는 물적분할을 단행할 때 내부 사외이사나 감사 시스템이 브레이크를 거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카르텔과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눈을 감아주고, 진실을 말하는 내부 고발자나 주주 행동주의 펀드가 나타나면 "경영권 침해"라며 일제히 똘똘 뭉쳐 방어막을 치는 꼴이 올림푸스의 썩어 문드러진 종신고용 카르텔과 너무나도 똑같았습니다. 결국 거대 기업의 지배구조가 타락했을 때, 정보력의 끝자락에 서 있는 우리 개미들은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사냥터에 던져진 무방비한 제물에 불과하다는 씁쓸한 확신이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올림푸스의 분식회계 사태는 아무리 정교한 파생상품 구조와 화려한 회계 기법으로 겉포장을 마사지해도, 본질적인 부실과 썩은 냄새는 결국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온다는 진리를 보여준 역사적 증거 보고서입니다.
우리가 주식과 펀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더 이상 주식 유튜버들의 감언이설이나 기업이 보기 좋게 정제해서 내놓는 분기 당기순이익 숫자만 보고 무지성 매매를 하는 바보짓을 끝내야 합니다. 그것은 언제든 기득권들의 장난질에 내 원금을 통째로 상납하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을 분석할 때 화려한 성장 스토리보다는, 현금흐름표에 진짜 현금이 도는지, 주석 사항에 정체불명의 특수관계인 거래나 케이맨 제도 같은 조세회피처로 흘러간 수상한 인수합병 자문 수수료 명세가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샅샅이 독학하여 나만의 철저한 '생존 무기이자 기준'으로 삼으려 합니다. 화려한 기술력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탐욕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 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