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대표에게 "어떻게 돈을 버냐"라고 물었더니 "저는 회계사가 아니라서 모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포춘지 기자가 엔론의 CEO 제프리 스킬링에게 직접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자기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모른다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말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탐욕과 구조적 부패가 어떻게 수십조 원짜리 기업을 무너뜨리는지, 그 과정을 찬찬히 짚어보겠습니다.

분식회계로 탄생한 에너지 공룡
엔론은 1985년 두 에너지 기업이 합병하면서 출발했습니다. 이후 케네스 레이가 대표 자리에 오르면서 회사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분야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규모가 커지자 레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에너지 트레이딩 사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에너지 트레이딩이란 가스나 전력 같은 에너지 상품을 중개·매매하는 사업으로, 거래 물량이 워낙 크다 보니 신용도가 사업의 핵심입니다. 문제는 엔론이 이 시점에 부채를 수조 원씩 끌어안고 있었다는 겁니다. 신뢰가 곧 돈인 트레이딩 업계에서 이 부채는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맥킨지 컨설팅 출신의 제프리 스킬링이 외부에서 영입됩니다. 스킬링이 꺼내든 해법은 연결재무제표와 개별재무제표의 차이를 이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연결재무제표란 모회사와 자회사의 재무 상태를 하나로 합산해 보여주는 재무 보고서입니다. 반면 개별재무제표는 모회사 단독의 재무만 기록하는 방식으로, 자회사에 투자한 금액만 원금으로 잡힙니다. 당시 대부분의 기업은 개별재무제표를 사용했고, 엔론은 이 허점을 정확히 겨냥했습니다. 자회사를 다수 설립해 부채를 잘게 나눠 넘기자, 모회사 장부에서는 부채가 마법처럼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빚을 청소한 엔론은 트레이딩 사업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구조는 불법이라기보다 회계 규정의 빈틈을 너무나 정교하게 파고든 방식이었습니다. 단순한 숫자 조작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이용한 설계였습니다.
마크투마켓 회계와 엔론 온라인의 결합
1999년 말, 엔론은 엔론 온라인(Enron Online)을 출시합니다. 천연가스와 전력을 비롯한 2,100여 가지 원자재를 거래할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로, 수수료가 0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IT 버블이 한창이던 당시, 하루 거래액이 3억~4억 달러에 달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엔론은 포춘(Fortune)지가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 1996년부터 2001년까지 6년 연속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출처: Fortune).
그런데 수수료가 없다면 엔론 온라인은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요. 포춘의 기자 베서니 맥클린이 바로 이 질문을 스킬링 대표에게 던졌을 때, 돌아온 답변은 "저는 회계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고, CFO를 보내 드리겠습니다"였습니다. 이게 그 유명한 전설적인 인터뷰입니다. 대표가 자기 회사 수익 구조를 모른다고 답하는 장면, 저는 이 대목을 접하면서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진짜 핵심은 마크투마켓 회계(Mark-to-Market Accounting)에 있었습니다. 마크투마켓 회계란 계약 체결 시점에 미래에 발생할 모든 매출과 이익을 즉시 장부에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A 기업과 5년짜리 에너지 수송 계약을 맺어 총 2,000억 원의 이익이 예상된다면, 일반적인 회계라면 매년 400억 원씩 5년에 걸쳐 계상합니다. 그런데 마크투마켓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그날 2,000억 원 전부를 한꺼번에 장부에 올립니다. 계약이 중간에 취소될 수도 있고, 실제로 이행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엔론 온라인이 성장할수록 미래 계약이 쌓였고, 그 계약들의 예상 이익이 모두 현재 매출로 잡혔습니다. 실제 현금이 들어오지 않아도 장부는 매년 40조, 60조, 80조로 불어났습니다.
지금은 마크투마켓 방식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엔론이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승인까지 받아 도입한 합법적인 회계 방법이었다는 점이 더 섬뜩합니다(출처: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감시자들의 침묵과 반복되는 인재
아서 앤더슨은 당시 5대 회계법인 중 하나로, 기업의 재무제표가 정확한지 검토하고 적정 의견을 내는 감사(Audit)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감사란 외부 전문가가 기업의 회계 장부를 독립적으로 검증해 투자자에게 신뢰를 보증하는 행위입니다.
아서 앤더슨은 이 감사 과정에서 엔론의 회계 조작을 묵인했고, 사태가 터지자 관련 증거 서류를 파쇄기로 인멸했습니다. 창업자 아서 앤더슨 본인이 신뢰와 도덕성을 회사의 근본 가치로 내걸고 세운 법인이었는데, 그 이름이 회계 부정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서 앤더슨은 이 사건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5대 회계법인은 지금의 4대 회계법인이 되었습니다.
2015년, 대한민국에서는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아직 들어오지 않은 수주 매출을 미리 계상하는 방식으로 장부를 꾸몄습니다. 장부는 흑자였지만 실제 금고에서는 매년 수천억 원이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사외이사, 회계법인, 로펌들은 막대한 자문료를 받으며 눈을 감았고,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주인 없는 구조 덕분에 낙하산 인사들이 돌아가며 성과급을 챙기고 떠났습니다.
엔론이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한 지능범이었다면, 대우조선해양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안에서 서로 눈을 감아주며 덩치를 키운 방조범이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불가항력적인 위기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구조적 부패가 결합해 만들어낸 완벽한 인재였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두 사건이 남긴 대가는 결국 아무 죄 없는 투자자들과 납세자들이 세금으로 치러야 했습니다. 엔론은 2만여 명의 직원이 일자리와 퇴직연금을 동시에 잃었고, 대우조선해양은 4조 원이 넘는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습니다. 지식인과 권력이 자본에 매수되었을 때 시스템이 얼마나 합법적이고 정교하게 타락할 수 있는지, 이 두 사건은 너무 비싼 수업료로 보여줍니다.
엔론 사태 이후 미국은 2002년 사베인스-옥슬리법(Sarbanes-Oxley Act)을 제정했습니다. 사베인스-옥슬리법이란, 기업의 재무 보고 투명성을 강화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의무화한 기업 개혁 법률입니다. CEO와 CFO가 재무제표의 정확성에 직접 서명하도록 하고, 위반 시 형사 처벌을 받도록 했습니다. 엔론 이전이라면 상상하기 힘들었던 규제가 생겨난 것입니다(출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재무제표는 회사의 실체가 아닙니다. 매출이 오른다고 해서 반드시 돈을 버는 게 아니고, 흑자라고 해서 건강한 기업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엔론과 대우조선해양이 남긴 교훈은 결국 하나입니다. 숫자 뒤에 있는 실제 현금 흐름과 사업 구조를 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감시해야 할 사람들이 침묵할 때 그 피해는 반드시 가장 약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투자자라면, 혹은 기업의 재무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영업활동 현금흐름(Operating Cash Flow)을 당기순이익과 함께 반드시 비교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