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혹시 다이슨 청소기 한 대씩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현재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무선 청소기가 당연한 세상이 되었지만, 다이슨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거실과 방을 옮겨 다닐 때마다 꼬여있는 긴 전기선을 풀고 연결하느라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청소기 본체가 선에 걸려 뒤집어지기라도 하면 짜증이 밀려오곤 했죠. 하지만 다이슨 무선 청소기를 집안에 들여놓게 되면서부터 선을 피해 다니는 수고 없이 간편하게 청소하고, 먼지 통도 손쉽게 툭 털어 비울 수 있게 되면서 일상의 편리함이 상상 이상으로 커졌습니다.
이 편리한 가전제품을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의문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다이슨은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라는 아주 단순한 단 하나의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오늘날 전 세계 프리미엄 가전 시장을 무소불위로 지배하는 독보적인 기술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발명가, 실패,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 상식을 뒤집은 집념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은 집에서 청소기를 돌리다가 먼지가 조금만 차도 흡입력이 뚝 떨어지는 고질적인 현상에 깊은 짜증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방문한 제진소 공장에서 거대한 원심력을 이용해 공기 중의 먼지를 따로 걸러내는 대형 장치를 보고, 이를 작은 청소기 안에 접목해 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허름한 마당 작업실에서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외로운 연구를 반복하며 시제품을 무려 5,127개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5,128번째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아는 먼지 봉투가 전혀 필요 없는 싸이클론 청소기 개발에 성공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인간적인 깊은 감동과 함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5년 동안 수천 번의 실패를 반복하는 동안 경제적인 압박과 주위의 시선이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당시 다이슨은 수입이 없어 아내의 재능과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발명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결국 지금의 위대한 다이슨을 만든 것은 대단한 천재성이 아니라, 그 어두운 터널을 버텨낸 포기하지 않는 끈기였던 셈입니다. 저 역시 살면서 이것저것 새로운 도전을 하다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금방 나오지 않으면, 경제적·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려 가던 길의 방향을 급하게 바꾸거나 아예 포기하고 새로 시작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5,127이라는 숫자가 가진 무게와 다이슨의 집념이 투자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더욱 대단하고 존경스럽게 다가옵니다.

상식 파괴의 무기들, 문전박대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우여곡절 끝에 기술을 개발한 다이슨은 특허를 들고 영국의 거대 가전 기업들을 찾아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전부 냉대와 문전박대뿐이었습니다. 당시 가전 대기업들이 다이슨의 혁신적인 기술을 반기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매달 소비자들이 정기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일회용 종이 먼지 봉투를 팔아서 남기는 고정 마진이 회사 매출에 엄청난 효자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먼지 봉투가 필요 없는 다이슨의 기술은 대기업들 입장에서 자신들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르는 유해한 기술로 보였던 것이죠. 눈앞에 보이는 소모품 판매 마진을 포기하지 못해 혁신의 타이밍을 놓치고 결국 시장에서 한순간에 밀려나는 대기업들의 모습은 비즈니스 세계가 얼마나 냉혹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뼈아픈 교훈입니다.
결국 아무도 기술을 사주지 않자 다이슨은 은행 대출을 받고 집까지 담보로 잡아가며 직접 회사를 차렸습니다. 최초의 모델이었던 'DC01 청소기는 먼지 봉투를 없앴다는 직관적인 무기로 출시 18개월 만에 영국 청소기 판매 1위로 올라섰고, 2002년에는 까다롭고 보수적인 미국 시장까지 단 2년 만에 점유율 1위로 장악했습니다. 이후 이들은 무선 청소기의 성공에만 안주하지 않고 2009년 선풍기에는 당연히 날개가 있어야 한다는 수백 년의 상식을 깨부순 날개 없는 선풍기를 출시했습니다. 뒤이어 2016년에는 초소형 모터를 손잡이에 넣은 슈퍼소닉 드라이기, 2018년에는 공기역학 기술로 머리를 자동으로 말아주는 다이슨 에어랩까지 연달아 히트시킵니다. 사실 다이슨 제품들은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기존 가전제품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이 비싼 제품에 눈길도 주지 않겠지만, 저처럼 막상 한 번이라도 직접 사용해 보게 되면 비싼 돈을 주고 왜 다이슨을 사게 되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됩니다. 가전의 패러다임과 상식을 통째로 깨부수는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아킬레스건, 중국 여행길에 마주한 '차이슨'의 공세와 포화 시장
그러나 지속 가능한 성장 관점에서 지금의 다이슨을 뜯어보면, 명확한 성장 한계와 아킬레스건도 함께 도사리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전제품이 지닌 태생적인 긴 교체 주기입니다. 스마트폰은 소비자들이 1~2년마다 스스로 새 제품으로 바꾸지만, 가격이 수십에서 백만 원이 넘는 다이슨 가전은 한 번 사면 고장이 나지 않는 한 5년, 10년씩 길게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이미 살 만한 사람들은 다 사버린 시장 포화 상태에 직면하게 되면 신규 매출 성장이 급격히 정체되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다이슨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약 3조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해 비밀리에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에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기존 완성차 업체들과의 규모의 경제 경쟁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음을 깨닫고 무참히 전면 폐기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시장 포화의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더욱 강력하게 다이슨의 목을 죄어오는 것은 중국산 카피 제품인 차이슨의 무서운 역습입니다. 실제로 제가 중국 여행을 갔을 때, 다이슨 무선 드라이기와 외관 및 색상 디자인이 완벽하게 똑같은 카피 제품들을 숙소를 옮길 때마다 방 안에서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심지어 길거리 노점상에서도 아주 흔하게 이 카피 제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 다이슨 성능의 80% 가까이 훌륭하게 구현해 내면서 가격은 진짜 다이슨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이 엄청난 저가 가성비를 무기로 중국산 카피 제품들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무섭게 잠식하고 있습니다. 독점적인 모터 기술로 높은 가격 결정권을 누리며 가전계의 애플로 군람하던 다이슨이, 이제는 박리다매와 카피 공세라는 거대한 치킨게임의 위험에 정면으로 노출된 셈입니다.
결론: 혁신으로 이룬 왕좌, 수성에 나선 다이슨
다이슨은 대기업들의 거만한 비웃음과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자신들의 혁신 기술을 믿고 끝까지 밀어붙여 전 세계인들의 생활 방식을 바꾼 위대한 기업입니다. 안주하는 기업은 무너지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도전하는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는 진리를 몸소 증명해 주었죠.
하지만 최대 매출처인 아시아를 공략하기 위해 2019년 본사를 싱가포르로 이전하는 승부수를 던진 지금, 다이슨은 시장 포화와 무서운 중국산 차이슨의 추격이라는 커다란 시험대 위에 올라서 있습니다.
단 하나의 싸이클론 아이디어로 가전의 역사를 새로 쓴 다이슨은 과연 이 위기를 딛고 또 다른 파격적인 혁신으로 왕좌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모방 제품들의 거센 파도에 밀려 프리미엄의 신기루를 잃어버리게 될까요? 매일 아침 드라이기를 켜고 청소기를 밀며 마주하는 이 기술 기업의 다가 올 미래가 궁금해집니다. 혁신으로 왕좌에 올랐지만, 수성에 나선 다이슨의 현금흐름 리스크는 지금이 가장 위태로운 시점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