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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버블 사태 (존 로, 사기, 반복된역사)

by 재미있는경제사 2026. 5. 12.

프랑스 주요 은행들이 아직도 '은행(Banque)'이라는 단어를 피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바로 미시시피 버블 사태 때문입니다. 300년 전 한 외국인이 저지른 금융 참사가 오늘날 단어사용까지 흔적을 남겼습니다. 존 로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중앙은행과 종이화폐 그리고 주식시장을 하나로 묶은 거대한 금융 생태계를 설계했었는데요. 좋게 보자면 현대 경제학의 핵심 원리를 아주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천재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체 없는 유령 사업을 신용과 연동해 버리는 바람에 절제 없이 돈을 찍어내면 나라가 망한다는 값비싼 교훈을 처음으로 남긴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존 로, 살인범이 설계한 중앙은행

일반적으로 중앙은행 제도는 체계적인 학자나 국가 기관이 설계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18세기 초 프랑스 왕실 재정을 뒤바꾼 인물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로, 런던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 선고를 피해 유럽을 떠돌던 도박꾼이었습니다.

그가 암스테르담으로 도피한 것이 결과적으로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국제 금융의 중심지였고, 존 로는 이곳에서 신용화폐(Credit Money) 이론을 발전시킵니다. 여기서 신용화폐란 금이나 은 같은 실물 귀금속이 아닌, 국가나 기관에 대한 신뢰를 담보로 발행되는 종이 화폐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지폐가 바로 이 개념의 연장선입니다.

당시 루이 15세 즉위 직후 프랑스 왕실은 부채 30억 리브르에 연간 이자만 2억 2천만 리브르였던 반면, 연간 세입은 1억 4,500만 리브르에 불과했습니다. 이자조차 감당 못 하는 사실상의 국가 부도 상태였습니다. 섭정 오를레앙 공 필립이 존 로의 제안에 귀를 기울인 것은 그래서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존 로가 설계한 핵심 장치는 두 가지였습니다.

  • 세금을 오직 신용화폐로만 납부하게 하여 강제적 수요를 만들었습니다.
  • 정부 국채를 담보로 화폐를 발행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신뢰를 쌓았습니다.

이 구조는 현대 통화정책의 원형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실제로 '방크 제넬이 프리베'가 설립된 후 상당수의 국채가 소멸되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등 초기에는 눈에 띄는 성과를 냈습니다. 방크 제네랄 프리베(Banque Générale Privée)는 존 로(John Law)가 1716년 프랑스에 세운 프랑스 최초의 민간 은행을 말합니다.

사기, 화폐남발, 그리고 붕괴 - 미시시피 회사

초기 성공에 고무된 존 로는 더 큰 계획을 들고 왔습니다. 북아메리카 루이지애나를 개발하겠다며 '미시시피 회사'를 설립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부분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회사의 진짜 목적이 신대륙 개발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핵심은 민간에 남아 있는 국채를 주식으로 바꿔 소각하는 것이었고, 미시시피 회사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국채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루이지애나의 황금 전설은 그 포장지에 불과했습니다.

실제로 탐험대가 현지를 조사했지만 금광도 은광도 없는 늪지대였습니다. 정착민을 보내려 해도 사람이 없어 죄수와 부랑자를 강제로 실어 보낼 지경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실체적인 매출 모델 없이 그럴듯한 백서(White Paper)만 내세운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2022년 테라·루나 사태가 겹쳐 보였습니다.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이라는 화려한 구조 설명 뒤에 실질적인 수익 모델이 없었고, 수십조 원의 시가총액이 며칠 만에 증발했습니다.

미시시피 회사 주식은 액면가 500리브르에서 시작해 단 1년 만에 2만 리브르까지 치솟았습니다. 4,000% 폭등입니다. 파리 곳곳에서 벼락부자가 쏟아지고 '100만 장자(Millionnaire)'라는 신조어가 탄생했습니다. 영국 귀족들도 파리로 몰려와 주식을 샀고, 하인이 심부름으로 산 주식으로 백만장자가 됐다는 이야기가 도시 전설처럼 퍼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전형적인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 즉 나만 수익 기회를 놓친다는 공포가 집단 전체를 집어삼킨 것입니다.

버블이 정점에 달했을 무렵 존 로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국채 매물이 바닥나자 신용화폐로도 주식을 살 수 있게 허용하고,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국채 담보도 없이 화폐를 마구 찍어낸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 사건 전체에서 가장 핵심적인 패착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플레이션(Inflation)이란 통화량이 실물 경제 성장을 초과하여 증가할 때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아무런 담보 없이 종이돈을 찍어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과입니다. 결국 물가가 급등하고 화폐 가치가 폭락하기 시작했고, 왕족 중 한 명이 주식을 팔아 금으로 바꿨다는 소문이 퍼지자 시장 전체가 패닉에 빠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주식을 팔아 신용화폐로 바꾸고, 다시 그 화폐를 금화로 교환하려 했습니다. 뱅크런(Bank Run), 즉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예금 인출을 시도하여 은행이 지급 불능에 빠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귀금속은 수량이 제한되어 있으니 신용화폐는 순식간에 휴지 조각이 됐고, 주식은 액면가 이하로 폭락했습니다.

이 상황이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시행한 무제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는 경기 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국채 등 자산을 매입하여 시중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입니다. 물론 지금은 연준(Fed)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프레임워크, 지급준비율 규제, 예금자 보호 제도 등 다양한 안전장치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실물 성장 없이 풀린 돈이 자산 시장에 쏟아지고 이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고통을 치른 과정을 보면서, 자칫 잘못하면 존 로가 저지른 실수의 현대판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섬뜩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반복된역사 - 제도적 견제의 부재

미시시피 버블의 후유증은 단순한 경제 손실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며 서민들이 굶주림에 내몰렸고, 이는 왕실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어져 훗날 프랑스 대혁명의 불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루이지애나에 대한 환멸이 깊어지면서 1803년 미국에 거대한 영토를 헐값에 팔아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금융 발전 자체가 수십 년 뒤처졌다는 점입니다. 영국이 중앙은행을 설립한 지 약 100년 후인 나폴레옹 집권기에야 프랑스는 신용화폐 체제로 복귀했습니다. 영국과의 경제 역량 격차가 벌어진 결정적인 배경 중 하나입니다(출처: 한국은행 경제교육).

경제학자들은 존 로를 '역사상 최고의 화폐 전문가이자 사기꾼'이라고 평가합니다. 저도 그 평가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신용화폐의 개념 자체는 탁월했지만, 통화량 조절(Monetary Control), 즉 발행된 화폐의 양을 경제 실상에 맞게 관리하는 원칙을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신용을 창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신용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가 이 사건을 돌아보며 느끼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제도적 견제의 부재라는 점입니다. 존 로는 규제의 공백 속에서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한을 누렸고, 금융감독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로비나 회계 부정으로 피하는 사건들이 반복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모기지 담보증권(MBS) 부실 판매 역시 규제 공백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있습니다(출처: 금융감독원).

 

미시시피 버블이 남긴 교훈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실체 없는 미래 가치만으로 만들어진 버블은 반드시 붕괴합니다.
  • 통화량 조절 없는 신용 창출은 인플레이션과 금융 붕괴를 초래합니다.
  • 제도적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피해는 언제나 개인 투자자와 서민에게 집중됩니다.

300년 전 파리 거리의 아수라장이 2022년 코인 거래소 화면 속 붉은 숫자와 닮아 있다는 생각, 단순한 과장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실적이 뒷받침이 되고 있는 것이 큰 차이지만 AI 반도체 주가 급등에 FOMO를 느끼며 빚을 내어 투자하는 지금의 분위기를 볼 때마다 금융정책이 얼마나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dw_61f1t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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