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한 송이가 집 한 채 값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400년 전 네덜란드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머릿속에서 현재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도지코인으로 오늘 돈 벌었다. 트럼프코인 사면 오른다. 밈코인의 급격한 상승과 하락에서 튤립 버블 사태가 그려졌습니다. 1637년 네덜란드 튤립 파동을 통해 인류 최초의 투기 거품과 가치 붕괴, 그리고 현재의 밈코인에 대해서 비교해 보겠습니다.

황금시대의 함정 : 넘치는 돈과 과시욕이 만든 무대
일반적으로 버블은 탐욕스러운 소수와 세력들에 의해서 만들어낸다고 알려져 있지만, 버블은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 빠르게 달아오릅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딱 그 경우였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은 아시아 향신료 무역을 장악하며 유럽 최고의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부의 주체가 왕이나 귀족이 아니라 상인 계급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덕분에 여윳돈을 굴릴 수 있는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늘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헤맸습니다. 1618년에 시작된 30년 전쟁은 경쟁국들의 무역과 산업을 붕괴시키면서 오히려 네덜란드에 엄청난 반사 이익을 안겨줬고, 유럽의 자본과 인력이 암스테르담으로 밀려들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당시 네덜란드의 금융 인프라입니다. 암스테르담에는 이미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가 존재했고, 선물 거래(Futures Contract)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선물 거래란 미래 특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으로 자산을 사고팔기로 지금 약정하는 계약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실물을 손에 쥐지 않은 채 종이 한 장으로 거래를 완결 짓는 구조입니다. 이 개념이 이미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있었다는 점이 훗날 버블의 가장 치명적인 촉매가 되었습니다.
금욕적인 칼뱅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였기에 노골적인 사치는 천박하게 여겨졌지만, 화려한 정원을 가꾸는 것은 용인되는 과시 수단이었습니다. 그 정원에 오스만 제국에서 건너온 이국적인 꽃, 튤립이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버블 - 가차 시스템과 레버리지로 인해 촉발되었다
튤립이 단순히 예쁜 꽃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역사에 기록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버블을 만든 핵심은 '튤립하 바이러스(Tulip Breaking Virus)'라는 존재였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감염된 튤립의 꽃잎 색소를 불규칙하게 파괴하면서 인위적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화려한 불꽃 무늬를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현상의 원인을 전혀 몰랐으니, 그 꽃은 그야말로 신의 축복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더 기묘한 구조가 있었습니다. 특정 구근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는 심어봐야만 알 수 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17세기판 가차(Gacha) 시스템이었습니다. 가차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확률형 아이템 뽑기 구조를 의미합니다. 운이 좋으면 희귀한 불꽃 무늬 튤립이 나왔고, 그 구근을 번식시키면 어미의 무늬가 복제된 클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최고급 품종이 바로 '셈페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 즉 영원한 황제입니다. 당시 네덜란드 전체를 뒤져도 수십 개가 안 될 만큼 희귀했고, 가격은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레버리지(Leverage) 구조가 결합되면서 폭발했습니다. 레버리지란 실제 보유 자금보다 훨씬 큰 규모의 포지션을 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튤립 선물 거래는 컬리지라 불리는 선술집에서 이루어졌는데, 증거금 같은 건 없었습니다. 1,000 길더짜리 계약도 전체 금액의 2~3%에 해당하는 술값만 내면 계약이 성립됐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담보 없이 수십 배 레버리지를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계약들은 제도권 밖의 사적 합의에 불과했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었습니다. 시세가 떨어지면 계약을 포기해도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었습니다. 사실상 손실이 없는 투자처럼 느껴졌던 셈입니다.
당시 튤립 버블의 구조적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무담보 선물 계약: 증거금 없이 전체 금액의 2~3% 술값만으로 거래 약정
- 법적 구속력 부재: 계약 포기 시 어떠한 법적 책임도 없음
- 실물 없는 거래: 땅속의 구근을 대상으로 종이만 수십 번 주인이 바뀌는 '바람 장사'
- 구조적 공급 감소: 바이러스 특성상 희귀종은 시간이 갈수록 번식이 어려워짐
이 구조를 보면서 저는 일반적으로 "당시 사람들이 어리석었다"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시스템 자체가 광기를 유발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진출처 : Unsplash의 Crystal Mapes
밈코인과 제도화: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저는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피자 가게에서 비트코인 10개를 받고 피자를 팔았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때, 주변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공짜로 채굴한 걸로 피자 사 먹는다니, 웃기는 짓이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피자 가게 주인이 현명한 것인지 아닌지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비트코인을 실제로 피자 값으로 받고 건넸다는 것 자체가, 암호화폐가 실물 교환 수단으로 기능했던 드문 순간이었다는 점입니다.
그 이후의 10년을 지켜보면서 저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리플등은 어느 정도 시장에 안착했고 현재 비트코인 현물 ETF(Exchange Traded Fund)가 미국에서 승인되며 제도권 편입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ETF란 특정 자산을 주식처럼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펀드 상품입니다.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는 2024년 1월 비트코인 현물 ETF 11개를 동시 승인했고, 이후 기관 자금이 유입되며 시장 구조가 변화하고 있습니다(출처: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이는 튤립 선물 거래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사적 합의에 불과했던 것과 달리, 코인 시장의 일부가 정식 금융 제도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로 저는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쏟아진 수천 개의 밈코인(Meme Coin)들은 달랐습니다. 밈코인이란 특정 기술적 기반이나 실용적 목적 없이 인터넷 유행어나 문화적 현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암호화폐를 의미합니다. 제 눈에는 그것이 정확히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과 같이 바람 장사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도 일상에서 쓰지 않는 코인에 힘들게 번 돈을 쏟아붓는 모습이 17세기 사람들의 광기와 겹쳐 보였거든요.
온체인 데이터 분석 기관인 글래스노드(Glassnode)에 따르면 상위 밈코인 투자자의 70% 이상이 단기 매매 목적으로 포지션을 취하며, 평균 보유 기간이 극히 짧은 것으로 나타납니다(출처: Glassnode). 제 경험상 이 구조는 튤립 버블의 가장 위험한 특성인 "다음 폭탄을 받을 사람이 있다는 맹목적 믿음"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리플 같은 코인이 제도권에 안착한다면 실물 화폐로서의 기능과 기관 자금 유입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밈코인에 큰돈을 넣는 것은, 영원한 황제 구근을 술값 몇 푼 내고 사두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산의 실질적 활용 가치가 아니라 다음 매수자의 존재에만 가격이 달려 있다면,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에 가깝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제가 최근의 밈코인 시장을 지켜보며 느꼈던 것들이 이것과 비슷했습니다. "올라가면 새로운 매수자가 더 비싼 가격에 사겠지"라는 심리가 만들어낸 환상 말입니다.
400년이 지나도 인간의 집단적 낙관 심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본인의 포트폴리오 안에서 무엇이 튤립이고 무엇이 향신료인지 한 번쯤 냉정하게 따져보시길 권합니다. 밈코인이 향신료가 된다면 제가 바라보는 관점이 틀리겠지만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우리는 분명 교훈을 얻어서 지금의 이 밈코인들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