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패미컴이라는 팩 게임기를 아시나요? 아마 80년대 혹은 90년대 초반에 유년 시절을 보낸 남성분들이라면, 어렸을 때 안방 텔레비전에 게임기를 연결해서 밤새도록 몰입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게임 팩에 먼지가 쌓여 인식이 안 되면 입으로 '후후' 불어서 본체에 꾹 눌러 꽂아 넣던 그 시절 특유의 설렘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화려한 게임기들과 컴퓨터게임과 비교하자면 너무나도 형편없는 그래픽과 효과음이었지만, 저는 당시에 그 팩 게임기에 완전히 빠져들어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손가락이 부르틀 때까지 패드를 누르곤 했습니다. 이후에 나온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까지, 당시 아이들이라면 닌텐도 게임을 해 본 경험은 무조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시기의 닌텐도는 그 어떤 경쟁사도 감히 넘보기 힘든,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거대한 제국이었습니다.

경쟁사들의 스펙 전쟁과 컴퓨터 게임의 습격
영원할 것 같던 이 글로벌 기업도 냉혹한 기술의 격변 속에서 한순간에 트렌드를 놓치며 파산 직전까지 몰리는 암흑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게임 시장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전 공룡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게임 시장을 폭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충격에 가까웠던 화려한 3D 그래픽과 영화 같은 스토리를 가진 대작 게임들, 그리고 엄청난 연산 칩을 탑재한 괴물 같은 성능의 기기들은 소비자들의 눈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저도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와 게임기를 연결하고, 부모님이 퇴근하실 때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빠져들곤 했습니다. 압도적인 몰입감을 주는 그래픽과 스토리에 매료되어, 밤에 침대에 누워서도 온통 게임 생각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당시의 변화는 가히 혁신적이었습니다.
여기에 닌텐도의 숨통을 조여온 또 다른 결정타가 있었습니다. 바로 개인용 컴퓨터의 급속한 보급과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등에 업은 '컴퓨터 온라인 게임'의 폭발적인 진화였습니다. 과거에는 동전 몇 개 챙겨서 동네 오락실을 가거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게임기를 연결해 놀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국에 PC방과 플스방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게임을 즐기던 학생들을 블랙홀처럼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리니지 같은 MMORPG는 가상공간에서 수많은 사람과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신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기존의 게임기들보다 더 큰 중독성이 있었고 당시에 친구들과 학교가 끝나면 단체로 pc방에 몰려다녔습니다.
혼자 모니터를 보며 정해진 스토리를 묵묵히 해결해 나가던 고립된 닌텐도식 게임은 그렇게 무너져갔습니다. 방바닥에 앉아 팩을 꽂아가며 투박한 그래픽을 보던 아날로그 시대의 게임기는 화려한 콘솔의 3D 그래픽과 온라인 게임에 밀려 창고 깊숙한 곳에 먼지가 쌓인 채, 마치 유물처럼 잊혀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닌텐도 경영진은 콘솔 경쟁사인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에만 매몰된 채, 시장의 거대한 축이 '혼자 하는 게임'에서 '함께 연결되는 게임'으로 바뀌어가는 매크로적 변화를 전혀 읽지 못했던 것입니다.

고정관념을 깨부수다, 저렴한 기술의 도입
사형 선고를 기다리던 닌텐도는 2004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반격을 시작합니다. 바로 닌텐도 DS의 대성공이었습니다. 닌텐도는 기기의 화면 두 개 중 하나에 터치스크린을 도입했습니다. 당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기술의 실체였습니다. 그것은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이미 은행 ATM기 등에 쓰이며 특허권마저 끝난 단돈 몇 백원짜리 구형 감압식 기술이었습니다.
닌텐도는 이 저렴한 부품 위에 매일매일 DS 두뇌 트레이닝, 닌텐독스 같은 직관적인 소프트웨어를 얹었습니다. 복잡한 버튼 조작에 두려움을 느끼던 40~60대 주부들과 노년층이 터치펜 하나로 게임에 입문하기 시작하면서, 게임 시장의 인구통계학적 지도가 통째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기술력 스펙 싸움으로 경쟁하기 힘들 때, 시장에 널린 저렴한 기술을 찾아 아이디어를 결합함으로써 아예 새로운 블루오션을 열어젖힌 것입니다.
뒤이어 2006년에 출시된 닌텐도 Wii는 리모컨처럼 생긴 패드를 흔들면 화면 속 캐릭터가 똑같이 움직이는 모션 인식을 선보였습니다. 이 역시 자동차 에어백 센서 등에 쓰이던 저렴한 가속도 센서를 재활용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고성능 컴퓨터 칩을 넣느라 기기를 팔 때마다 적자를 보며 비용 압박에 시달리던 반면, 닌텐도는 이 저렴한 부품 조합 덕분에 기기를 판매할 때마다 엄청난 마진(순이익)을 남기는 괴물 같은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방구석에 혼자 고립되는 게임이 아니라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가볍게 즐기는, 과거 우리가 경험했던 아날로그적 소통의 풍경을 창조해 내며 닌텐도는 화려하게 왕좌로 부활하는 데 성공합니다. 친구집에 갔을 때 닌텐도 WII를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 전문적으로 게임을 즐겨하는 이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크게 매력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닌텐도는 타겟층을 온 가족으로 정의했습니다. 가볍게 집안에서 운동도 할 겸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하이브리드의 정점 닌텐도 스위치와 존재하는 리스크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의 파도는 끝이 없었습니다. 2010년대 스마트폰의 급격한 보급으로 닌텐도에게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고, 2012년 Wii의 후속작으로 내놓았던 'Wii U'가 시장에서 처참하게 외면당하면서 또다시 수년 연속 수천억 원대의 적자를 기록하며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벼랑 끝에 매몰되었던 닌텐도는 자신들이 가진 하드웨어 노하우를 극한으로 융합해 다시 한번 위대한 반전을 일으키는데, 그것이 바로 닌텐도 스위치의 출시입니다. 거실에서 하는 가정용 게임기와 밖에서 하는 휴대용 게임기의 역량을 하나로 합쳐, 스마트폰이 도저히 주지 못하는 패드를 손으로 쥐고 플레이하는 물리적인 손맛을 극대화한 것입니다. 기기 출시와 동시에 발매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 그리고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연달아 메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무려 1억 4천만 대 이상이 팔려나갔고, 역대 가장 성공한 게임기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닌텐도는 단순한 장난감 제조 회사를 넘어 디즈니를 위협하는 강력한 콘텐츠 및 IP(지식재산권) 제국으로 완벽한 체질 개선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눈부신 성공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관찰하는 제 시선에서 닌텐도가 품고 있는 숨은 리스크와 모순들은 여전히 날카롭게 눈에 밟힙니다. 가장 먼저 지적할 점은 하드웨어의 기술적 나태함입니다. 현재 닌텐도 스위치에 탑재된 메인 칩은 기술적으로 이미 수명이 다했다고 평가받는 구형 반도체입니다. 이 때문에 최신 게임들을 구동하면 화면이 툭툭 끊기는 프레임 드랍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해상도가 거칠게 뭉개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고성능 스마트폰 화면에 눈이 높아진 지금의 사용자들에게 수십만 원짜리 닌텐도 스위치가 보여주는 이 조악한 퍼포먼스는 즐거움보다는 불안감과 아쉬움을 자아냅니다.
또한 일반적인 자본주의 시장에서 게임 소프트웨어들은 시간이 지나 감가상각이 이뤄지면 가치가 하락하기 마련입니다. 타사 게임들은 출시 후 1~2년만 지나도 큰 폭의 할인을 감행하죠. 하지만 닌텐도는 다릅니다. 2017년에 출시된 <젤다의 전설>은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인터넷 결제창이나 매장에서 출시 초기 가격 그대로 고가를 꼿꼿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 일본처럼 가계의 문화 소비력이 탄탄한 선진국 시장에서는 이 배짱 가격 정책이 통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외의 국가들이나 가성비를 따질 수밖에 없는 합리적인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형편없는 기기 성능과 비싼 칩 가격의 조합은 강한 의구심을 갖게 만듭니다.
작은 팩 게임기 패미컴의 향수에서 시작해 사방의 적으로 고립되었던 암흑기를 지나, 자신들만의 철학으로 왕좌를 되찾은 닌텐도의 스토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유행이나 겉모습이 아닌 진짜 본질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닌텐도는 시장에서 뒹굴던 저렴한 낡은 기술을 사고의 전환을 통해 엄청난 하드웨어 마진을 남기는 괴물 같은 수익 구조를 짜냈습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거대 자본과 그래픽이라는 게임의 룰에 말려들지 않고, 고객의 범위를 온 가족으로 확장하며 자신들만의 독점 IP 제국을 구축해 낸 닌텐도의 성장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가장 영리한 생존 방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사용자들은 성공의 이면에서 의문과 리스크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닌텐도가 보여주는 기술적 나태함과 정책이 앞으로도 영원히 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입니다. 스마트폰보다 못한 사양의 기기를 수십만 원에 팔면서, 10년이 지나가는 낡은 스펙의 게임 칩 가격을 유지하는 정책은 가치에 비례하는 가격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습니다. 독점에 취해 소비자가 용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술적 성의마저 외면한다면, 그 강고해 보이는 제국도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늘 존재합니다.